한반도 문제 예상밖 수습가닥

입력 1997-02-19 00:00:00

최근 황장엽(黃長燁) 노동당비서의 망명과 탈북 귀순자 이한영(李韓永) 피격사건 등을 계기로 잠수함사건에 이어 또다시 난마처럼 꼬일 것만 같던 한반도 사태가 예상밖으로 조기에 수습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북한이 황장엽의 망명을 수용할 뜻을 비쳤고, 한·미 양국은 대북 식량원조 규모를 대폭 확대하는 계획을 최종 협의중이며, 일련의 사건으로 어려울 것 같던 한국측 경수로 부지조사단의 파북(派北)도 예정대로 추진될 전망이다.

지난해 발생한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때와는 달리 한반도가 이처럼 잇단 악재를 순조롭게 극복해가고 있는 것과 관련, "미국이 막후에서 적극적인 수습노력을 기울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있다.

특히 미국과 북한이 비밀접촉을 통해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태로 인한 파장을 최소화하고 남북한간의 긴장국면 재발을 막기 위한 모종의 합의를 이룬 결과가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황장엽의 망명사건 초기 거의 도발적인 행동을 보였던 북한이 돌연 그의 서울행을 선선히 받아들일 뜻을 시사한 것은 "북한의 독자적인 상황판단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더구나 북한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에 뒤이어 최고지도자 김정일이 "비겁자들이여, 원한다면 가라"고 황의 망명 수용의사를 거듭 확인한 것은 평소의 북한측 태도로 미루어 얼른 납득까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

또한 한국정부도 이한영씨 피격사건이 북한의 침투공작원에 의해 저질러졌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와 경수로 7차 부지조사단의 파북에 동의하는 등 사건초기의 대북정책선회조짐을 누그러뜨렸다.

이와 관련, 워싱턴의 외교전문가들은 "미국이 최근의 사태로 한반도 문제가 다시 악화되는 것을방지하기 위해 막후에서 적극적인 중재노력을 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하고 있다.즉, 돌발적인 최근의 사태로 남북한 관계가 다시 악화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서로 감정을 자제하고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결사' 역할을 담당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한반도에 긴장사태를 몰고왔던 잠수함사건 처리과정에서 남북한의 입장을 성실히중계하며 북한의 사과성명과 4자회담 설명회 참석을 이끌어내는데 성공, 한반도의 대결 분위기를가라앉힌 바 있다.

취임후 첫 해외순방에 나선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이 유럽방문 기간중"미국은 이들 사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면서 황비서 망명과 이씨 피격사건이 더이상 악화되지 않기를 희망한 것은 바로 이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볼때 황비서 망명사건이 발생한 후인 지난 13일 이뤄진 미-북간 뉴욕접촉에서 워싱턴과평양간에 '모종의 대화'가 오갔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미-북간에는 뉴욕접촉이나, 아니면 다른 경로를 통해 의견교환이 이뤄졌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북한의 최대 관심사인 식량난 해결과 한반도 4자회담 문제 등이 진지하게 거론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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