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김덕홍씨 역할

입력 1997-02-14 14:29:00

황장엽(黃長燁) 북한 노동당비서가 이번 망명사건의 주인공이라면 그와 동행해 북경총영사관을찾아온 심복 김덕홍(金德弘)씨는 조연에 비길만하다.

김씨는 아직 베일에 싸여있는 이번 사건 전개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조연이라는 것이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황비서의 제1심복으로 알려진 김씨의 직책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 자료연구실 부실장.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겸직한 조선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이라는 '사업가'로서의 활동이 더 컸던 것으로 파악된다.

통일원에 따르면 여광무역은 지난해초 우리나라의 '씨피코 국제무역'과 남북한 폐지·폐의류 재활용 임가공사업 추진에 합의했고, 한국의 폐지나 자투리 옷감을 수입해 북한 주민들로하여금 컵받침이나 크리스마스 트리장식품 등을 만든뒤 다시 수출했던 일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여광무역은 또 L상사, D건설 등 국내 대기업들과 연해주 농장을 개발하는 것을 장기 프로젝트로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도 벌목공 등 북한의 대러시아 인력송출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총사장이 벌어들인 외화가 황비서가 담당하는 해외주체사상연구소들의 지원에 흘러들어가는 등 두 사람간에 어떤 금전적 관계도 형성돼 있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있다.

황비서가 망명을 결심한 후부터 김총사장의 역할은 '길잡이'에 비유하는게 적절할듯 하다. 망명의적절한 시기와 방법, 성공 가능성, 망명 대상국 등을 물색하고, 구체적인 망명 계획을 세우는 것은 그의 몫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95년 4월부터 이미 북경에서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일을 하는데는 북한내에서보다 자유로웠을 것은 물론이다.

여광무역의 업무상 김총사장은 중국을 자주 드나드는 우리 기업인들과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자본주의 사정에 밝았던 것으로 보인다. 간접적으로나마 남한 사회를 알고 있었다는게 동반 망명결심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으리라 추리할 수 있다.

이같은 배경에서 그는 70대의 노령인 황비서의 망명길에서 믿음직한 손과 발 노릇을 톡톡히 해냈을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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