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韓·中 외무회담

입력 1997-02-14 14:44:00

제1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외무장관회담기간중 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외무장관 회담결과가 황장엽(黃長燁) 북한노동당비서의 망명사건으로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정부는 당초 유종하(柳宗夏)장관과 전기침(錢其琛) 중국외교부장간의 양국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대만핵폐기물의 북한반입 저지를 위한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었다.그러나 북한 정권 성립이후 최고위층인 황비서의 망명요청이라는 대사건을 맞아 더 시급한 당면외교목표는 황의 안전한 한국행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유장관이 ASEM 장관회담 참석을 취소했다가 다시 참석키로 한데는 전외교부장과의 양국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풀겠다는 복안이 담겨있다고볼 수 있다.정부는 일단 중국정부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 한·중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시키면서 가장빠른 시일내에 황비서를 서울로 데려오도록 한다는 방침에 따라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중이다.중국은 국제적 관례에 따라 망명을 허용해달라는 한국측 요청을 외면할 수도 없지만, 마지막 사회주의 혈맹인 북한측 입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난처한 처지에놓여있다.

외무부 당국자는 "이번 사건은 남북한과 중국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미묘한 사안으로 자칫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면서 "황비서가 이미 한국으로의 망명을 요청한 상황인 만큼 가급적 빠른시일내에 서울로 데려올 수 있도록 중국과의 외교적 협의를 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유장관은 중국측과의 회담에서 '황비서가 자발적으로 한국공관에 찾아와 망명을 요청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당국이 국제관례를 존중, 황의 자유의사에 따라 한국으로의 망명을 허용해 줄것을 요청할 방침이다.

유장관은 특히 북한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는 중국측 입장을 감안, 황의 객관적인 자유의사 확인을 위해 필요할 경우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등 국제기구의 개입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중국측이 이러한 한국의 요청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이다.특히 북한은 황비서의 한국망명요청을 '납치극'이나 '조작극'으로 선전하고 있다. 또 어떠한 형태로든 '방해공작'이나 보복행위를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중국측의 고민도적지않을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중국의 고민은 우리와의 1차교섭에서 "내부 입장정리가 필요하다"며 입장표명을 유보한 것으로도충분히 느낄수 있다.

정부는 이에따라 중국측이 한·중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보고 이에따른 대책을 수립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측은 그러나 황의 망명사건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한국측에 전달하면서도 이의 비공개를요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김경호씨 일가가 중국을 경유해 홍콩에서 망명을 요청했을 당시에도 북한측과의 외교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꺼려 이에대한 공식적인 언급을 피하는 신중한 자세를 보인적이 있다.전문가들은 중국이 이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을 회피한채 황의 한국행을 묵인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있다.

정부는 그러나 한·중간의 협상이 답보상태에 빠질 경우, 일단 미국등 제3국을 경유한뒤 황비서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방식은 지난 80년대 중반 발생했던 김만철씨 일가의 일본 망명사건 당시입장이 난처했던일본측이 김씨 일가를 대만으로 보낸뒤 한국으로 가도록한 전례와 같은 맥락이다.한·중외무장관이 북한체제의 핵심인물인 황비서의 망명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양국관계의향방을 예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그 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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