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탐방-점술 문화

입력 1997-02-13 14:08:00

사주, 궁합, 택일, 신수....

점집은 음력 정월초부터 한해의 신수를 보려거나 인생의 대역전을 바라며 내일을 점쳐보려는 사람들로 대목을 맞고있다. 남녀노소 가릴 것없이 운명과의 만남을 통해 운명의 궤도를 바꾸려는소박한 마음으로 가득한 것이다.

선사시대부터 인간 예지의 한계는 곧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연결됐고 이같은 두려움은각종 점술의 등장을 가져왔으니 점은 곧 인류와 함께 해온 일종의 하위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우리에게 있어 점은 '언제나 1백%% 다 믿기는 어려운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특유의 영험함으로 고락을 같이해왔다.

11일 오후 5시 가창 대원사. 용하기로 소문난 산할매를 찾아 온 30대 중반의 한 주부는 근심이가득한 표정이다. 올 4월 미장원을 확장이전하기로 했으나 절대 이전하지 말라는 산할매의 점괘를 받았기 때문.

이 날 하루만도 1백여명의 손님이 이곳을 찾아 산할매는 날을 넘겨가며 점을 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구시내에 소재한 점집과 철학관의 수만도 현재 5백여개소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점집이 많이 밀집해있는 곳은 중구 달성공원 일대. 30여곳의 점집과 철학관이 들어선 이곳은 수십년 동안 '점쳐온' 터줏대감들도 적지않다. 용하다는 점집들엔 아예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나눠주는 예약표를 받고 이튿날 다시 점을 보러 오기도 한다.30여년간 줄곧 이곳에서 점을 쳐온 할머니(64)는 "하루 평균 5~6명의 손님이 오는데 주로 사업성공여부나 직장관계 문제를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점이 인생살이에 적당한 활력을 줄만큼들어맞는 부분도 물론 있지만 삶과 죽음등 인생의 결정적인 문제까지 다 규정하는 것으로 맹신하는 것은 오류"라고 귀띔한다.

대목을 맞은 점집들도 경기불황의 '무풍지대'는 아니다. 한국역술인협회 대구지회장 이장춘씨(57)는 "예전엔 불경기때가 되면 손님이 크게 늘곤 했으나 요즘은 별반 차이가 없다"며 "비등록업소의 난립이 한 원인일 것"이라 말한다.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이같은 점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동양철학인 주역(周易)에도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역은 우주 만물의 변화원리에 관한 철학적 학문. 기원전 8~5세기경 중국의 복희(伏羲)씨가 우주삼라만상의 변화원리의 하나로 팔괘(八卦)를 창안했는데 이후 주나라 문왕과 주공(周公), 공자, 정자(程子), 주자와 여러 선유(先儒)를 거치면서 이 팔괘에 대한 해석이 점차 체계화, 학문적인 의미를 띠게 됐다고 전한다.

다만 공자가 주역을 체계적 학문으로 정립시키기 이전까진 주역의 철학적 측면보다는 당시의 혼란한 시대상황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미리 점쳐보는데 유일한 과학적 접근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오늘날까지도 주역이 철학적 측면과 함께 복서(卜書)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것도 이같은 연유에서다.

그러나 요즘 간간이 행해지는 주역 강의는 모두 주역의 학문적 탐구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으며복서로서의 기능은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이후 동양경전 국역, 고전강좌 개설등의 활동을 해온 동양고전연구소(754-0025)의 경우 다음달부터 16주간 주역 공개강좌를 신설한다. 중국 명대에 만들어진 '주역전의대전'을 기초로 중국철학과 동양사상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넓히는 동시에 인접 학문과의 학제적 연구도 별도의 번역모임을 통해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PC통신의 사주, 궁합, 운세 코너에서만 일 15만여회 이상의 폭발적 조회건수를 기록하는가 하면'700-84(팔자)××'등 700서비스의 단골메뉴에까지 오를 만큼 점은 '답답한' 미래에 대한 예측과자기위안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며 존속하고 있다.

점의 성행은 어수선한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것일까. 오늘도 곳곳의 점집들엔 사람들의 분주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李春洙.金辰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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