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亡命따른 신중한 대책을

입력 1997-02-13 14:56:00

북한의 체제붕괴는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같다. 북한을 지탱하고 있는정신적 지주인 주체사상을 집대성하여 이론적 체계를 확립한 장본인이 허구의 세계를 빠져나와우리에게 망명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당국자는 어제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과 그의 비서 김덕홍이 북경에서 한국공관을 통해 망명을 요청했다"고 공식 발표하고 "그의 망명은 평양정권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고하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황의 망명은 우리가 여태까지 목격해왔던 수많은 정치가와 정치에 희생된 이들의 단순한 망명이아니다. 그의 망명은 북한사회주의의 말살을 뜻하는 쿠데타적 파괴력을 지니며 배가 고파도 이념으로 뭉칠수 있다던 북한주민들의 실낱같은 희망까지도 무너져버린 엄청난 사건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황은 북한사회의 엘리트며 지배계층의 실세이다. 그는 혁명1세대에 속하는 학자이자 사상가이며원로다. 그런 그가 가족을 버리고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망명이라는 '한계의 벽'을 제발로넘어온 것은 경제파탄과 봉건적 독재권력의 혼란이 권력상층부까지 붕괴시키고 있다는 뜻이다.황의 망명은 추위와 배고픔을 못이긴 일반 탈북자와는 비중도 다르고 무게도 다르다. 그의 망명동기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총론적으로 요약하면 북한사회의 '희망없음'이 주동기일것 같다. 구체적 각론으로 들어가면 사회주의로 위장한 독재권력의 환멸, 주체사상의 허구성,체제붕괴시의 위기감외에 최근 방문한 일본에서의 경제협력 실패등을 들수 있다.우리 정부는 황의 망명 소식을 접하고 우선 "이들의 용기있는 행동에 경의를 표한다"고 환영하면서 이들의 조속한 귀국을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황은 북한사회의 거물급이기 때문에 망명절차를 밟는 동안에 북한당국이 어떤 트집을 부릴지 아니면 어떤 돌발행동으로 일을 그르칠지 모른다.

이미 북한은 황의 망명을 김정일의 심대한 체면손상으로 간주하고 중국정부에 강력하게 어필하고있다. 만약 북한이 뜻대로 되지 않을땐 폭력적 방법을 동원, 암살과 납치를 기도할지도 모른다.그리고 망명후 보복조치의 일환으로 국지분쟁을 일으키거나 해외공관 습격및 해외주재 상사원및관광객에까지 테러를 감행할지도 모른다.

정부는 중국정부와 협조하여 망명 요청자들을 국제법에 의거 안전하게 그리고 자유의사에 따라귀순할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망명후의 후유증이라 할수 있는대남무력도발에 대해 강력한 대비책과 아울러 북의 붕괴에 대한 대책도 시급히 세워야 할 것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