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영화사이(21)-데이비드 린 '아라비아의 로렌스'

입력 1997-02-11 14:13:00

우리에게 아라비아란 무엇인가? 과거의 그것은 에로틱한 아라비안나이트이고 현재의 그것은 전쟁광신국 또는 석유벼락부자인가?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슬람 신자인 무슬림이 늘고있다.한국인 신자수만 3만명이고 외국인 근로자까지 합치면 1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슬람교를 믿게되는 이유로는 그것이 물질적인 욕망에 초연하고 도덕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술은 물론 돼지고기 개고기 등을 금하고 단식을 요구하며, 요란한 춤과 노래도 금하고 남녀십세부동석을철저히 지킨다.

그러나 우리의 이슬람 인식은 아직도 편견과 무지에 가득차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미국과 유럽식의 제국주의적인 이슬람 관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서양은 이슬람을 침략하기 위해 갖가지의 편견을 조작했다. 그것이 침략자도 아닌 우리에게까지 세뇌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나 이는일제와 미국문화의 침투가 지독함을 말해준다. 서양은 이슬람이 폭력의 종교라고 왜곡하나 사실은 평화의 종교이고, 일부다처사회라고 매도하나 사실은 대부분 일부일처제이다. 이러한 왜곡은서양이 동양을 침략 지배하기 위해 동원한 동양후진상, 곧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노골적인 형태이다.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1910년대 아라비아에서 영웅으로 받들어진 영국인 청년을 둘러싼 영국영화이나 현대 아라비아 역사의 뿌리, 특히 서양과의 관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당시 영국은아라비아에서 산출되는 엄청난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열강과 다투었었다. 서양의 아라비아정책은그 때나 지금이나 석유지배를 그 출발점으로 한다.

물론 미국도 그 예외가 아니다. 최근의 페르시아만 전쟁에 이르는 미국의 아라비아 개입도 바로석유 때문이다. 세계의 석유시장을 지배하기 위하여 미국은 아라비아를 과거의 유럽열강처럼 그냥 놔둘 수 없다. 따라서 아라비아 민족과 끊임없이 대결한다.

제1차대전중 영국은 아라비아 각지의 족장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도록 부추겨 터키와 독일을 견제하고자 했다. 로렌스는 그러한 사명을 띠고 아라비아에 파견되어 게릴라전술로 터키군을 섬멸하여 아라비아의 영웅이 된다. 그러나 영국은 제1차대전후 아랍인의 독립을 지원하기로 한 약속을배반하여 그후 아랍의 서방측에 대한 뿌리깊은 원한과 불신을 초래했다.

서양에서는 로렌스를 현대의 영웅으로 숭상한다.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가 그렇다. 예컨대 앙드레 말로는 그를 '서양 최초의 자유영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미 학문적으로 로렌스는 영국의 일개 스파이로서 제국주의자라고 하는 점이 분명히 밝혀지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로렌스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이미 일제시에 로렌스가 영웅으로 소개되었고 특히 학도병의 영웅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홍규〈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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