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넉넉한 여유

입력 1997-02-06 14:39:00

우리 할아버지들의 만남은 간단하고 여유가 있었다.

장소와 시간을 정확하게 정하지 않아도 "내일 장에서 만나세"하면 그만이었다.그때 시골사람들은 대개 아침을 먹고나서 장날이 서는 곳에서 가까운 주막에서 지인들을 만나곤했었다.

그때는 아무리 힘이 들고 더러워도 마다하지 않고 일거리가 있기만을 소원하던 때였다. 하루 세끼의 밥도 먹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친구를 만날 수 있던 시절이었다.70년대 이후 산업사회로 가면서 약속은 일 오후 시 분 모다방이란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필요로했다. 가난해서 먹고 살기에 바빠도 넉넉한 여유를 갖고 살아가던 모습은 어디로 보냈는지 지금에 와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들다. 음식점에 가서도 '빨리 빨리!'란 용어는 필수어가되었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무단횡단하는 보행자의 모습도 흔하게 볼수 있고 한치도 여유없는운전주행으로 경적소리와 '하이 빔'이 일상적인 도로의 풍경이 돼버렸다.

어쩌다 도로상에서 자동차끼리 접촉사고라도 나면 '팔자를 고칠 기회라도 잡은 양' 욕설과 주먹다짐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주행까지 방해하기 일쑤다.

최근 50년동안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국민소득만도 1백배이상 증가되었고의식주의 변화는 너무나 빨랐다. 우리는 50년전 할아버지 세대들에게 현재의 풍요로운 삶에 대해 어떠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한겨울 쌀 한말값을 주고 겨우 한 가족이 먹을 딸기를 살 수 있는 이 세태를 배를 굶주리고 살아온 할아버지세대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경주대교수·금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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