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외압수사 어디까지 왔나

입력 1997-02-05 00:00:00

한보 특혜대출 의혹사건 수사가 이 사건의 최대 핵심인 정치권 외압 의혹으로 초점이 맞춰지면서검찰이 고민하고 있다.

한보철강에 대한 대출과정에서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정치권 인사에 대한 금품로비 시점과 청탁시점이 차이를 보여 형사 처벌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대로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은 특정 시점을 가리지 않고 아무런 대가없이 정·관계 인사들과 금융권 유력인사등에게 전방위적으로 금품을 수시로 살포하는 독특한 로비 스타일을 이용해왔다.

특히 선거철이나 명절때 아무런 청탁없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 까지 거액을 덜컥 건네줘 사전에 기름칠을 해둔 뒤 적당한 시기에 어려운 사정을 넌지시 털어놓기 때문에 로비 시점과 청탁시점 사이에 시간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한 개인이 특정 정치인에게 호의적으로 금품을 주는 것은 처벌할 수 없게 돼있다.

막연히 '평소 존경해오던 분이니 정치하는데 마음놓고 쓰십시오'라며 정씨가 돈을 들이 밀었다면이를 받아도 아무 문제가 안되는 것이다.

정씨는 평소 이렇게 길을 닦아놓은뒤 대출을 받아야할 시점에 '전화한통해 주십시오'하는 수법을썼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들의 말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순수한 정치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은 정치권 인사가 몇개월이 지나 정씨의부탁을 받고 은행장에게 '한보의 자금사정이 어려운데 국가기간산업이니 도와줘라'고 전화해 대출이 이뤄졌다면 이를 처벌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을실토했다.

서울고법 형사부의 한 배석판사도 "로비시점과 구체적 청탁시점이 상당한 기간의 차이가 난다면대가성있는 청탁관계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정씨와 연루된 정치인들이 대출시점 직전이나 직후에 금품을 건네 받았거나 재경위,통산위 등 관련 상임 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금품을 받아왔다면 이는 수뢰죄나 알선수재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대출이 이뤄진 직전이나 직후 돈을 받았다면 이는 특혜 대출에 대한 일종의 사례비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뇌물성 입증이 용이하고,또 92년 이후 국회 재정경제위나 통상산업위에 소속된 의원들은 국정감사등 '직무상' 한보철강의 대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수 있어 형사처벌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편 4일 검찰에 소환된 신광식 제일은행장 등은 "당진제철소 건설사업이 국가기간산업인데다 중요한 대출결정 시점에서 정치인으로부터 전화까지 받았기 때문에 '윗선이 밀고 있구나'라고 판단해 대출을 해주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어느 은행장이 국회의원 청탁을 받고 대출을 해줬겠느냐"면서 "본인스스로 돈을 받았기 때문에 대출을 해준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니겠느냐"며 은행장들의 변명을 일축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때 정씨는 정치인이나 은행장을 돈으로 매수해 자신의 편으로 만든뒤 '국가기간산업체를 살려야 하지 않느냐'는 대의 명분을 내세워 양쪽을 교묘하게 이용했으며 정치인이나은행장들은 '설마 국가기간산업체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안이한 판단에 청탁을 하고 대출을 해줬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한보 사건을 사정차원에서 수사를 진행중인 검찰은 정씨의 진술을 통해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여·야의 중진의원 등 일부 정치인들이 자금추적 등을 통해 돈을 받은 것으로 확인 될 경우 형사처벌하거나,형사처벌이 어려우면 이들의 명단을 국회에 통보,국회윤리위원회에 넘길 가능성이 높아 정치권에 곧 사정 한파가 몰아닥칠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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