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지역섬유 회생책 없나

입력 1997-01-29 15:49:00

세계최대 합섬직물 산지인 대구경북의 섬유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2년동안 지속된 불황은 연쇄부도사태와 함께 섬유인들 사이에는 기업을 포기하려는 심리가고조되는등 지역섬유업계를 대혼란의 수렁으로 몰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한해 무려 1백여개의 섬유업체들이 부도를 냈다. 특히 작년 하반기부터는 이화염직, 금성염직, 원천산업, 명보섬유 등 내로라하는 중견기업들마저 맥못추고 쓰러져 섬유업계는 물론 지역경제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지난해 수출물량은 19억2천5백10만3천㎡(직물수출조합 추정실적), 수출금액은 23억6천9백84만4천달러. 물량에서는 9.3%%가 늘어난 반면 금액은 되레 4.8%%나 줄었다. 수출단가의 추락을 의미하는 수치다. 수출부진으로 공장마다 재고물량이 쌓이고 있다. 현재 역내 재고물량은 6억야드가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2개월치 수출물량이다. 급기야 정부가 섬유업계의 긴급수혈 요청에 따라금융권의 대출여력을 1천1백억원 늘려줬으나 급한 불을 끄는데도 미흡했다.

섬유산업은 지난 60년대 이후 '수출입국'이란 국가적 대명제 아래 수출주력산업으로 육성됐으며실제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왔다.

특히 대구경북은 섬유산업의 성장사와 궤를 같이 했으며 '섬유의 메카'로 자리하고 있다. 전국 2천9백여개의 직물업체중 61%%가 이곳에 운집해 있으며 합섬직물 업체는 1천1백여개로 전국의74%%를 차지하고 있다.

역내 업체의 워터제트룸 보유대수는 4만2천여대(추정). 세계최대의 규모다. 대구경북의 제조업체중 섬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업체수에서 34%%, 고용측면에서 33%%를 점유하고 있다. 이처럼 섬유는 명실상부한 지역 주력업종이다.

지역섬유는 산지조성이후 지난 30여년간 양적팽창을 거듭해왔다. 특히 시설자동화를 기치로한 '합리화사업'을 전개한 86년부터 95년까지 근 10년간 매년 10%% 이상의 수출신장세를 유지해왔다.

이같은 생산규모가 지역섬유의 '경쟁력' 그자체였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세계시장 환경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대량생산체제만을 비교우위로 한 지역섬유는 이제 설자리가 없게 됐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지난 60년대 우리가 섬유산업을수출주력산업으로 육성했듯이 생산시설을 증대하고 우리의 시장을 넘보고 있다.저임금을 바탕으로 중저가 양산체제로 급속히 우리를 추격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고가품을 주력으로 안정궤도에 오른 일본, 이태리 등 섬유선진국들과 경쟁하겠다는 것은 현생산체제를유지하는 한 승산없는 게임이다.

지역섬유는 홍콩, 중국의 주요수출시장으로 봄여름용 폴리에스테르 직물을 중심으로 한 생산체제이다. 일반화된 제품을 양산하는 생산체제로 차별화,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는 선진국보다 상당히 뒤쳐져 있다.

차별화제품 개발, 섬유인프라 구축, 시장다변화를 추진, 시장변화에 대비해야 했는데 그 시기를놓친 것이다. 현재의 불황 원인은 여기에 있다.

경기순환적, 단기적인 불황이 아니라 구조적, 장기적 불황이기 때문이다.

섬유업계는 구조개선협회를 구성, 구조개선사업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대로 섬유산업의 기반이 몰락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는 절대절명의 몸짓이다.

업계가 추진하려는 구조개선사업은 선진국형 섬유산업으로의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변모하지 못한 산업들은 사양길로 이어진다. 60년대 면방과 목재산업, 70년대 봉제와 가발, 80년대 신발과 자전거 산업의 몰락 사례는 이를 입증한다. 섬유산업 구조의 대변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 최대의 합섬직물산지의 기반을 땀으로 다져온 초창기 섬유인들의노력이상으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섬유인들의 '기업가 정신'이 어느때 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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