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비난보다는 노력을

입력 1997-01-24 15:05:00

"정정길 〈서울대교수·행정학〉"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지도자들의 잘못을 질타하고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높다. 비난받아서마땅하다. 곳곳에서 중소기업이 쓰러지고 경제가 바닥을 모른채 곤두박질하고 있는 상태에서 노동법개정을 둘러싸고 혼란을 자초했으니까 말이다. 사실은 이외에도 비난받을 일이 한두가지가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속이 시원할지는 몰라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민주사회에서는정부나 정치인들에게 크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정부가 할수 있는 일에 한계가 크게 있을뿐만 아니라 정치인은 그 역할상 눈 앞의 인기나 임기응변에 급급하고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떠들고 책임자를 비난하는 것보다는 우리 모두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가지만이라도 우리 스스로가 고치는노력을 해야 한다.

*창의력이 경쟁력 열쇠

분권화를 예로 들수 있다. 21세기의 경제는 정보화가 주도하고 정보화시대에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 웨어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얼마나 많은 돈으로 거창한 기계설비를 갖추고 있느냐가아니라 얼마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보다 성능이 좋은 기계를 설계하느냐가 경쟁의 승패를 결정짓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얼마나 잘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경제가 살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시애틀은 엄청난 공장규모를 지닌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회사인 보잉사를 과거에는 큰 자랑으로삼았지만 지금은 머리하나로 세계적인 갑부가 되고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장악하고 있는 빌 게이츠의 회사를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인간의 육체노동중에서 로봇이 대신하는 영역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사무자동화가 대대적으로 추진되는 정보화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각자의 창의력을최대한 살리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결정권 존중돼야

개인의 창의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각자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서 최대한의 재량권을 가지도록 분권화를 시켜야 한다. 각 부서별로 결정권을 최대한 가지도록 하고 각 부서에서는상급자가 아니라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하급자가 결정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 각자가 자기가 맡은 바에 대해서 책임과 아울러 결정권을 가져야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오고 계속 연구하고 익혀서전문성도 축적된다. 바로 이 분권화가 권위주의적 전통에 젖어있는 우리 사회가 쉽게 터득하지못하는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분권화가 필요한 것은 경제분야만이 아니다. 사실은 우리사회에서경쟁력이 제일 낙후되어 있다는 정치·행정분야에서 더욱 절실하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가급적 그 분야의 정책공동체에서 합의를 보는 정책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책공동체는 특정 정책분야별로 상급자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문가를 비롯하여그 분야의 현장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상이한 의견들이 대립할 수도 있으나 대강의 합의를 보는 부분은 받아들이는 것이, 그 사회에서 그 문제에 대하여 가장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으면서도 그 사회가 제시할 수 있는 지혜를 총동원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정책결정 '총의'가 중요

금번의 노동법 개정에서는 기업대표, 근로자대표, 중립적인 공익대표등이 참여한 노사개혁위원회에서 오랫동안의 논의와 검토를 거쳐서 상당부분 합의를 본 사항들이 있었다. 이 부분은 일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바로 이 부분을 뒤집음으로써 커다란 혼란을 자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원은 당수의 눈치를, 밑에서는 장관의 눈치를, 장관은 대통령의 눈치만 보아서는 결코 21세기를 성공적으로 맞이할 수 없다. 이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분권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그들로 하여금 분권화를 하게끔 압력을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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