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문화도시인가-원로가 없다

입력 1997-01-24 14:12:00

대구지역 문화예술계는 한사람이 평생동안 이뤄온 예술적 성취나 업적으로 개인을 평가하기보다는 학연, 지연이나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원로'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학에 몸담아 많은 제자를 길러낸 예술인의 경우 은사로서, 후견인으로서 원로아닌 원로로 대접받기도 하지만 정작 뚜렷한 배경이 없는 원로 예술인은 본인의 원숙한 예술적 경지나 업적의 성취여부에 관계없이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고있는 실정이다.

원로란 폭넓은 경험과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후배들의 창작활동에 지표가 될 만큼 다방면에서뛰어난 거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예술적 성취 없이 단순히 영향력이 크거나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원로로 인정하는 풍토는 잘못된 관행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현상은 음악·미술·연극등 모든 예술계 전반에 걸쳐 확산돼 좀처럼 고치기 힘든 고질병이 되고 있다는데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난해초 대구시가 대구문화예술관장을 전문가로 초빙키위해 지역문화예술계의 의견을 수렴했으나 각계의 의견대립으로 관장임명이 4개월이나 지연됐다. 모두에게 존경받는 원로가 없는 탓에각 예술계의 알력과 대립만 심화되었던 것이다. 결국 전형위원회 구성등을 통해 관장이 임명되긴했으나 지역 문화예술계 모두의 전반적인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원로부재의 현실을 극명히 반영해준 지난 91년 연극계 사례.

대구시 규모로 꼭 필요했던 대구시립극단 창단이 각 극단의 파벌싸움끝에 무산되고 말았다. 대구시가 재정지원방침까지 확정했던 시립극단창단이 내부잡음으로 결렬, 대구연극계가 소탐대실의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만약 지역 연극계 전체의 뜻을 대변하고 다스릴 만한 존경받는 원로가 있었다면 시립극단의 창립은 보다 손쉬웠을 것이라는게 연극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한편 후배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을수 있는 원로예술인들의 활동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역음악계의 경우 지난 해 대구원로음악가회가 조직됐으나 별다른 활동이 없는 실정이다. 또 이들 원로들이 대구음악계에 바람직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있다.

미술계의 경우도 원로들이 후학들의 전시회에 적극적으로 참여, 격려와 지적을 해주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다.

다행히 '원로부재 현실'에 대한 일부 문화예술계의 반성과 자각이 최근들어 일고있다. 지역 연극계는 지난 해 10월 '원로찾기운동'의 일환으로 지역출신 원로연극인 '홍해성선생 기념사업회'를발족했다. 연극계는 그간 무관심했던 원로들에 대한 예우분위기를 확산시킨다는 차원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히고있다.

그러나 이같은 자구적인 움직임이 지역 전 예술계로 확산될 수 있을 지는 두고볼 일이다.〈柳承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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