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연세대교수·경제학〉"
연초부터 온 나라가 노동법 파동으로 스산하기만 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정치권은 권위와 체면만 내세운 채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여당은 날치기 통과의 정당성에 얽매여 개정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야당이 특정한대안을 갖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특정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영수회담을 통한 정치적 해결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정부는 불법적인 파업에 강경대처한다는 소리만 높이고 있다. 이러는 사이 노동계의 파업은 확산되고, 이제는 넥타이 부대들도 파업에 동조하는 것 같다. 경제가 정치의 볼모가 된 채, 또 한번한국적인 비극이 국민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형국이다.
*파업대책없는 정치권
정부는 그 동안 세계화와 국제화를 외치면서 선진국 클럽에 가입하고 경쟁력 높이기에 열을 올렸지만, 이번 파동으로 이러한 노력은 일시에 수포로 돌아간 느낌이다. 이번 파동이 세계언론의 비판대상이 되어, 군사독재시대의 횡포에 버금간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파업이 경쟁력 높이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생산현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는 호황을 구가하고 후발 경쟁국의 추격이 치열한 오늘의 현실에 우리 경제는 언제까지 60년대식 파동에 휘말려야만 하는가? GNP의 25%%에 달하는 외채와 엄청난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우리 경제가 언제까지 정치의 볼모가 되어야만 하는가? 결국 모든 피해는 국민에게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만 하는가?
*토론 모르는 정치후진성
최근 파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토론과 대화가 없는 정치권의 후진성에 돌릴 수밖에 없다. 노사문제가 1년동안 개혁위원회에서 논의되어 왔지만, 국회에서는 단 한번도 제대로 진지한 토론을 거치지 못했던 것이다. 토론을 원천 봉쇄한 야당이나 이를 피해 날치기를 시행한 여당이나 낙후성에 있어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토론과 여론수렴과정이 생략되다보니 많은 국민들은 사실 개정법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있다.
무엇때문에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선진화되었는지, 노동계가 주장하는 대로 근로자의 생존권이박탈당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정리해고와 변형근로제가 대량해고와 실업을 유발할것이라는 우려만 팽배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경기침체와 주가폭락등 어두운 현실과 맞물려 더욱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파동의 해법은 이해관계자의 진지한 대화와 토론에서부터 시작되어야만 한다. 권위와 체면을 앞세운 정치적 계산 때문에 대화에 앞서서 많은 전제조건을 내세우는 60년대의 상투적인 행태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모든 당사자가 경제여건의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대안을 갖고 진지한 토론에 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잘못된 것은 과감히 버리고 수용할 것은 감내해야만 하는 아픔을 나누어야 한다.
*당사자 진지한 대화를
정치과정은 결국 타협과 조정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토론하는 문화가 없이 모든것을 얻거나아니면 포기한다는 강경일변도의 극한 대립은 버려야 한다. 또한 경제생활을 규정하는 법규가 만고불변의 진리처럼은 통용될 수도 없다. 동태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언제라도 개정할 수도있는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경직된 제도와 의식, 극한 일변도의 대립속에 정치의 볼모가 되어버린 경제는 날개 없이 추락하는 고전적 표상이다. 누가 날개를 달아주고 다시 올라가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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