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학년도 고려·연세·서강대 논술문제-연세대

입력 1996-12-28 14:13:00

〈인문계〉

논술Ⅰ

다음 글을 읽고 '상투적인 말'이 사회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우리 주변에서 관찰되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1500자 안팎으로 서술하시오.

말은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인 동시에 사람이 세상을 보고 생각하며 행동하게 하는 틀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말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제약하기도 한다.

말중에는 오랜 기간동안 여러 사람들에 의해 버릇처럼 쓰여 굳어지고 정형화된 말이 있다. 이를'상투적인 말' 또는 '버릇말'이라 한다. 흔히 쓰이는 수사적 표현이나 인사말, 구호나 표어 등이그러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상투적인 말이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상투적'이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인 느낌을 줄 뿐 아니라 '상투적인 말'이 남용될 때에는 말하는 이의 마음이 뒤따르지 않는일이 잦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우리의 생활속에서 종종 볼 수 있듯이어떠한 말이라도 본래의 뜻이나 말하는 이의 마음을 옹글게 담지 못한채 '속이 빈말'이니 '마음에 없는 말' 또는 '입에 발린 말'로 쓰인 경우에는 상투적인 말로 굳어져 쓰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투적이라고 해서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우리가 던지는 한마디 상투적인 격려의 말이나 하나의 좌우명, 사회적 캠페인의 슬로건등이 우리의 의식을 일깨워주고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잘 살아 보세 나 일등 국가,일등 국민 이라는 말이 국민에게 진취적인 기상을 고양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투적인 말은 사회적 합의를 갖는다. 다시 말해 언어현상은 우리사회의 문화적, 사회적,특성과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언어현상이 왜 생기는가, 또한 상투적인 말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그 배경에 깔려있는 우리사회의 특징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논술Ⅱ

다음 두 글에 들어있는 논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500자 이내로 요약하시오.

가) 공상과학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에는 기계인간을 찾아 제거하는 임무를 띤 진짜인간 데커드가 결국에는 자신이 제거하려던 기계인간 레이첼을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영화에서 진짜 인간은 기계인간보다 더 차갑고 비인간적으로, 기계인간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기계적 인간과 인간적 기계 사이의 사랑이라는 역설이 실현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간과 기계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오랫동안 두려워하고무시해왔던 기계를 인간처럼 대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무대는 가상의 미래이지만 인간과 기계를 대립적인 것으로만 보아 왔던 지금까지의 인식에 변화를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이제 기계와 인간을 이원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계와 인간을 분리해서 보는 한 '인간은 결국 기계의 주인'이라는 맹목적 낙관주의나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리라'는 묵시록적 비관주의를 벗어날 길이 없다. 낙관이냐 비관이냐 하는 입장 선택을 강요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하이테크가 우리의 삶을개선시켜 주리라는 희망과 하이테크로 인해 인간성이 억눌릴 것이라는 강박 관념이 서로 물고 물리면서 우리를 들뜨게 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이 양면성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우리의 과제는 이 양면성과 대결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착각에 기초한 이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인간성'을 '기계성'과 구분하고 인간성만을 통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비관적 낙관주의는 잘못된 전제에 기초해 있다. 기계가 위험스러운 것은 인간이 위험스러운 것과 마찬가지이며 기계가 친구인 것은 인간이 친구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랫동안 대립해 있던 두 극(極)들을 서로 합치는 융합이다. 분리되었던 몸과 마음, 남성과 여성, 사회와 자연, 공과 사, 동양과 서양 등이 곳곳에서 결합하고 있지 않은가. 최근 생물학에서 말하는 생물체와 환경과의 '공진화(共進化)'도 마찬가지이다.생명체는진화하기 위해서 거시적 조건인 환경을 새로 만들어 내며, 새로운 환경은 미시적 생명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결국 생명체와 환경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분리되지 않는 '환경-생명'이 스스로 진화하는 것이다. 융합과 진화는 이러한 사고를 바탕에 두고 분리되었던 사물들이 결합하면서 한층 높은 차원의 존재로 탄생하고 변화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결합은 역동적 분신(分身)을 불러일으켜 결합하는 당사자들의 에너지를 끌어 모아 증폭시키면서 새로운 삶과 문명을 형성해 나갈 것이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서양사상을 추종하면서 동양사상을 열등한 것으로무시하는 태도나, 동양사상이 앞으로의 문명을 밝혀줄 등불이라고 생각하면서 서양사상을 거부하는 태도 역시 이분법적 사고에 깊이 물들어 있다. 서양이 오늘날의 풍요를 가져다 준 자신들의정신문명을 비판하고 문제삼는 것처럼, 동양 또한 자신이 자랑하는 유학과 불교, 노장사상, 힌두교 등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해야한다. 애초에 이러한 사상들은 인류의 나아갈 길에 대해 깊이 통찰하게 해주고 영혼을 닦을 수 있는 생명력으로 출발했지만 형식주의와 권위주의, 신비주의에 종속되어 감으로써 폐쇄의 타성에 빠져 빛이 바랜 것이다. 중세 유럽이 고대 희랍을 받아들여 르네상스를 일으켰듯이 오늘날의 서양은 불교를 받아들여 제2의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동양도 마찬가지로 서양을 업고서야 자유로이 날 수 있다.

나)내가 과학과 시에 매력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 사이의 유사성 때문이 아니라 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 또는 모순성 때문이다. 같은 대상을 분명히 다른 두 가지의 관점에서 보면서그 둘 사이에 증대되는 긴장을 느낄 수 있기에 커다란 매력을 느낀다.

모순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어린시절부터 우리는 모순을 피하고 일관성이있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우리의 경험은 우리 자신이 모순덩어리일 뿐만 아니라 모순이 없다면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변증법의 핵심이다. 모든 물질의 구성 단위인 원자 자체는 양전하와 음전하로 구성되어 있다. 물이나 전기와 같이 흐르는 것은무엇이나 자연법칙에 따라 양극단 사이를 흘러 간다. 우리는 근대 물리학에서 현상을 이해하는방법은 입자와 파동 또한 질량과 에너지처럼 상호보완적이면서도 모순되는 두 개념을 이용하는것임을 배워왔다. 그렇기에 시와 과학적 이해가 우리 존재의 감각과 핵심을 전해주는데에 상호보완적이라는 사실과 둘을 함께 결합시킴으로써 마음 속에 강력한 섬광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은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접한 두개의 극 사이, 육체와 정신 사이, 내용과 형식 사이, 입자와 파동 사이, 숫자와 느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긴장처럼 중요한 현상은 하나가 시작되고 다른 하나가 끝나는 두 물질의 경계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표면 현상을 연구하는 물리화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빛이 반사되고굴절되어 한 점으로 모이고 시신경을 자극하여 형상을 만들어 마침내 우리가 볼 수 있게 되는 지점은 바로 두개의 서로 다른 매개 물질 사이의 경계면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학생들에게 노아의 홍수를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가르쳤던 기록이 남아 있다. 그 기록을 보면 그는 우선 학생들에게 산산조각 나 버린 배, 바위에 짓눌린 양떼, 우박, 천둥,회오리바람, 썩어가는 시체 등 무서운 것들을 그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을 지적한 다음에 그는 거대한 산이나 큰 건물이 무너지면서 무거운 물체가 넓은 물속으로 떨어지면 많은 양의물이 공중으로 튀어오르고 물이 튀어오르는 방향은 물체가 떨어진 방향과는 반대 방향이 될 것이라는 점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즉 반사각은 입사각과 같다는 설명을 한 것이다. 여기에는 반사에대한 냉정한 물리학적 법칙과 죽음과 파괴에 대한 지극히 감정적인 설명 사이의 대립이 있다. 그것이 바로 명백한 것과 추상적인 것, 일반적인 것과 특별한 것, 재현될 수 있는 것과 재현될 수없는 것, 질서와 혼돈, 그리고 과학과 시의 대립이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에 커다란 감동을 주는매우 강렬한 대립이다. 만약 이러한 이원성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온통 회색지대일지도 모른다.그래서 아마도 신은 두개의 상반된 극단으로 분리했을 것이다. 신은 아담이 살아서 움직이기를바랐던 것이다.

논술Ⅰ

다음은 두 학생이 유행에 대해서 각기 자신의 입장을 밝힌 글이다. 두 사람은 개인적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이유에서도 각기 자신의 견해를 정당화하고있다. 두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하여, 유행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자신의 주장을 1500자 안팎으로 논술하시오.(유의사항: 유행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고려할 것)가) 나는 유행에 따라 옷이나 신발을 바꾸기 좋아한다. 유행은 새로운 경향이나 흐름을 반영하기에 유행을 따르면 시대를 앞서갈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따르는 것은 인간의 아주 자연스러운 속성이 아닌가. 유행은 또한 계속 바뀌기 때문에 단조로운 우리의 생활에 변화와 활력을가져다 준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유행을 따르는 것이 개성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도 유행은 새로운 제품의 개발을 촉진하여 우리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많은 이유들이 있다. 그래서 유행을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나) 나는 옷이나 신발을 유행에 따라 바꾸지는 않는다. 유행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므로 유행을 따르지 않는 것이 내 나름의 개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유행이 새롭다고 하지만 실상은 돌고 돌지 않는가. 나는 또한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는 것도 싫고, 끊임없이 유행에 신경쓰는것도 싫다. 새롭고 낯선 것보다는 친숙한 것을 좋아한다. 유행이 바뀔때마다 새로운 상품을 계속만들어 내야 하므로,사회적으로도 유행은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을 초래한다. 그 외에도 많은 이유들이있다. 그래서 유행을 따르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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