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기택총재 만큼 화려한 정치경력의 소유자도 드물다. 4·19를 주도한 고려대학생위원장출신에다 최연소 야당 사무총장, 3번에 걸친 야당부총재와 총재, 7선경력의 의원으로 정계지도자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그런 그가 요즘은 정계의 한 켠으로 물러나 있다. 4·11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지금 언론으로부터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게다가 우여곡절끝에 수습한 민주당이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결성을 계기로 주류, 비주류가 갈라서면서 이제 스타군단으로까지 불리던 당의 화려한 컬러도 없다.
그런 그가 대선정국에서 재기를 꿈꾸고 있다. 12석의 민주당이지만 공당으로서 대선준비를 하지않는다는 것은 자멸을 재촉하는 길밖에는 안된다. 또 7선의원 경력으로 야당 외길을 걸어온 그에게 아직까지는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는 신년휘호를 호시우행(虎視牛行)으로 정했다. 내년은 대선으로 정국이 혼란한 시기인 만큼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판단하고 황소처럼 신중하게 행동해 한해를 극복하겠다는 뜻이다. 전국의 당원동지들에게 손수 쓴 이 휘호를 보냈다.그는 또 김원기전대표의 제명으로 당을 경량화한 후 대선 채비를 본격화하도록 지시했다. 대선관련 정세분석과 기획업무를 담당할 기획조정실도 대폭 강화했다. 92년 대선때 박찬종후보캠프에서핵심역할을 담당했던 전대열씨와 박사급 전문위원들도 보강했다. 사조직 재정비작업도 착착 진행중이다. 전국 85개지부 6천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사조직인 통일산하회 재정비를 위해 강창성부총재와 강수림의원등 핵심인사들이 본격적으로 뛰고 있다.
당차원에서의 대선준비와는 별도로 자신은 야권 대통합론을 역설하면서 야권통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야권 대통합을 통해야만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다며 강연정치등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물론 그는 이 야권대통합에 김대중 김종필총재등 양김씨는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권의 대통합이후 제3의 후보가 나올 경우에는 민주당도 대선에서 후보를 내는 것을포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그는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두김씨도 종식돼야 할 대상이어서 정치적으로 함께 할 입장이 못된다"며 이들의 배제를 분명히 했다.
물론 국민회의와의 분당이후 관계가 악화된 김대중총재에 대한 불만도 있지만 3김시대 종식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를위해 그는 내년을'3종(終)'을 실현하는 해로 잡았다. 소위 3김시대와 지역할거주의, 부패정치의 척결이 그의 목표다. 총선에서 2백30만표의 지지를 얻은 민주당이 대선정국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경우 이 목표는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내년 초에는 자신의 야권통합론을 성사시키기위해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선과 관련된 자신의 입장도 분명히 밝힐 예정이다.하지만 그에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90년 3당합당과 국민회의와의 분당이후 겪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3김씨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역구 낙선도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4·11총선에서 낙선한 후 그는 주변과의 접촉을 끊고 한동안 잠적하기까지 했다. 낙선이라고는 경험하지 못했던 그가 최근 잦은외유를 가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도 할 말이 많다. 그는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정치지도자는 권력과 정치자금, 지역배경등 3가지중 하나는 갖추어야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우 이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갖고 있는 것이 없다는게 현실적인 푸념이다. "야당만 해 오는 바람에 권력과는 거리가 멀다. 또 깨끗한 정치를 주장하는 바람에 돈도 못쓰고, 3김씨의 후배이기 때문에 지역배경도 없다"는게 그의 항변이다.
자신에게 따라다니는 돈에 인색하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그의 항변은 마찬가지다. 기존의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이해관계에 따라 돈을 긁어 모아 정치를 했다면 자신도 누구 못지 않게 할 수도있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우리정치의 현실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옛날에는 정치인맥을 구성하는 데 의리가 있었다"면서 "이제는 정치판에서도 의리는 간 데 없고 이세가지가 정치인을 구속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내주장이 옳다고 생각해서 내 길을 걸어 왔고 앞으로도 내길을 걸어갈 것"이라며 "시대의 변화는 소수의 정의로운 목소리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는 어쨌든 우리 정치사에서 계보나 가신출신의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다.
3김시대와 맥을 같이하는 정치인이지만 자신의 원칙에 충실한 면은 김대중국민회의총재로부터 "저런 사람은 처음 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고집스런 면모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 3김정치로부터 혹독한 시련에 시달리고 있다.
3김의 막판 대접전이 예상되는 내년 대선정국은 그를 더욱 고난으로 몰아붙일 공산이 크다. 3김이후의 대안세력으로 성공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달려있다고 해도과언이 아니다.
〈李相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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