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좌익게릴라들에 의해 리마주재 일본대사관저에억류중이던 이원영(李元永) 주 페루대사가 사흘만인 20일오후(이하 현지시간) 일시적으로 석방돼 가족의 품에 안겼다.
다음은 이대사가 현지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밝힌 정황과 외무부측의 설명등을 종합해 재구성해본 악몽의 사흘이다.
이대사가 일본국왕 생일기념 리셉션에 참석하기위해 공관을 떠난 시각은 17일오후 7시 35분. 대사관에서 서류결재를 마친뒤 원종온(元鍾溫 3)서기관에게 "밤9시까지는 돌아오겠다"고 밝힌뒤 공관을 떠났다.
당초 파티는 7시 시작이고 부부동반이었지만 페루에서는 1-2시간정도 늦게 도착하는 게 관례였고부인은 "몸이 불편하다"고 해 혼자 떠났다.
이대사를 실은 승용차는 20여분뒤 오후 8시 시내 중심가인 산 이시드로에 위치한 일본대사관저에도착했다. 현지인인 기사에게 "1시간뒤에 나올테니 기다리라"고 한뒤 관저로 들어갔다.파티장인 정원에 도착해보니 수백여명의 손님들이 칵테일을 들며 담소하고 있었다. 후지모리대통령은 이미 다녀갔다고 한 관계자가 귀띔했다.
주빈인 아오키 모리히사(靑木盛久) 일본대사에게 인사를 한뒤 15분정도 외국대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귀청을 뚫는 폭음이 들려왔다. 이어 AK소총으로 무장한 괴한들이 폭파된 대사관저 차고를 이용해 건물안으로 뛰어들었다.
이에 놀란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계속됐고 파티장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건물안으로 들어온 게릴라들은 "엎드려. 움직이면 쏜다. 우리는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단원이다.해치지 않을테니 지시를 따르라"고 스페인어로 외쳤다.
이대사는 처음에는 대사관저 밖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알고있다 갑자기 나타난 무장괴한들과15분간 총성이 계속 울리는 것을 보고 사태가 심상치않음을 깨닫고 바닥에 엎드렸다.20여명의 게릴라들은 AK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여성대원도 3명정도 간간이 눈에띄었다. 밤 9시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게릴라들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이들은 인근병원으로 후송됐다.
게릴라들은 관저를 장악한뒤 인질들을 외교사절, 일본인, 페루인, 정부각료등 각방으로 분리했는데 외교사절들은 2층의 한방에 수용됐다.
약 30분이 지난후 게릴라들은 지역라디오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부녀자와 노약자를 석방하겠다"고 통보하고 밤 10시 15분 1차로 부녀자 35명을 석방했다. 이어11시 20분 후지모리대통령의 어머니와 여동생등 노약자와 부녀자들을 또 석방했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맴돌기 시작했다.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 부인과 서울에 있는 노모 및 두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도했지만 기도를 하면서 마음을 달랬다.다행히 게릴라들은 인질들을 거칠게 다루지않았고 대사들에게도 정중하게 행동했다.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18일 아침이 되자 게릴라들은 대사들에게 대사관과의 전화를 허용했다. 김옥주(金玉洲)참사관에게전화를 걸어 "신변에 이상이 없다"고 말했지만 옆에서 게릴라들이 감시를 하는 바람에 그 이상의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옆의 앤서니 빈센트 캐나다대사등과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보냈는데 그는 자신이 88년부터 4년간외무부의 테러대책국 책임자를 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오후 6시가 되자 빈센트대사를 비롯해 독일 그리이스대사와 프랑스문정관등 5명이 먼저 석방됐다. 빈센트대사는 먼저 나가게 돼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대사의 손을 꼭 쥐었다.또 하루가 지났다. 워낙 많은 인질들이 잡혀 있어 식사가 모자란 듯 하루에 2끼밖에 제공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대사관저에서 비축해둔 비상식량을 먹기도 했다.
그러나 낮 12시께 국제적십자사(ICRC) 마크를 단 요원들이 생수, 음료수 및 간단한 음식과 화장지 등을 갖고 관저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각 방마다 화장실이 있는 바람에 생리작용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또 TV를 볼 수 있도록 허용해 밖에서 진행되는 소식을 대충 알 수 있었다. 다만 방송뉴스를 지켜보던 일부 게릴라들은 일부 대목에서 "정확하지않은 보도를 한다"며 신경질을 내기도 했다.잠시 밖에서 총성 2발이 울려 긴장하기도 했지만 대사관저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에게 경고를 하기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었다.
화장실을 가다가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2년전 리마에 와 일본의 미쓰비시상사페루지사장 보좌역으로 있는 재일교포 이명호(李明浩)씨였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덥석잡고 안부를 물은뒤 "희망을잃지말고 견뎌내자"고 당부했다.
다시 하루가 지나 20일 아침이 밝았고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안전한 석방을 갈구했다.
기도의 효력이 발생한 탓인지 낮이 되면서 게릴라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페루정부에 전달할 대표단을 대사들중에서 선발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외교단은 현장에서 대책회의를 갖고 이대사와 브라질, 이집트대사를 대표로 선발했다.
드디어 오후 7시 20분 30여명의 노약자를 비롯해 38명의 인질들이 밖으로 나왔다. 자유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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