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정부 온건-강경 오락가락 속셈

입력 1996-12-23 15:09:00

"시간 벌면서 인질 하나둘 빼오자"

[리마] 페루정부는 일본대사관저 인질사태에 사실상 속수무책인 상태다. 상황이 너무 복잡하기때문이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인질을 풀어주면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지게 되고 그 반대로 인질구출작전을 펴면 희생자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 여기에다 미국이 테러범과의 타협 자체에 대해 완강히 반대한다. 그만큼 운신의 폭은 매우 좁다.

인질사태는 후지모리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인질을 석방할 경우 대규모 반군토벌로 이룩한 치안회복과 경제발전을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정권의 위기를 맞아 몰락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인질을 석방할 수 없는 입장이다.그렇지 않아도 후지모리 대통령은 원래 반군에 강경한 입장이다. 특공작전을 펴서 반군을 분쇄하고 싶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일지 모른다. 그가 21일 대국민연설에서 무력동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데서도 이런 입장은 잘 나타난다. 그를 잘 아는 인사들은 그가 상당히 강직한 성격의소유자라고 말한다. 그가 언제라도 특공작전을 펼칠 수 있다는 게 관측통들의 분석이다.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본대사관저에는 고위 정부 관계자 외에 외교사절이 다수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다 최대의 피해국이자 페루에 영향력을 갖고있는 일본이 반군과 협상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때문에 페루와 일본은 견해차를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런 상황에서 페루정부는 시간벌기 작전으로 들어가고 있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무조건적인 인질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반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일본정부에 전달했다.반면 도밍고 팔레르모 교육장관을 정부의 의사전달자로 만들어 대화의 숨통은 터놓고 있다. 페루정부는 시간벌기가 가장 강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작전은 효력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일 반군이 이원영(李元永)대사를 비롯해 인질 38명을 풀어준 조치는 이와 무관치 않다. 대규모 석방은 반군의 고도로 계산된 조치일 수도 있다.그러나 그 반대도 성립한다. 반군은 초조한 나머지 협상의사가 있다는 제스처로 그런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페루정부는 우는 아이도 상대를하지 않으면 스스로 풀이 죽는다는 전략으로 나가고 있다.

현재 시나리오는 페루정부가 시간을 벌면서 반군이 조건투쟁을 벌이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원래 이 시나리오 외에 반군요구의 완전수용, 특공작전 전개 등이 있었다. 그러나 두 방법은 페루정부에 타격을 안겨줄 수도 있다. 시간벌기는 페루정부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만 반군이 그간 특이한 행동을 벌이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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