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일기-애마와의 작별

입력 1996-12-20 00:00:00

오늘도 어김없이 두 딸아이의 등교준비는 잠자리에서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 1학년, 3학년인 두 딸애는 아침잠이 왜그리 많은지 한 남자와 세 여자가 사는 우리집은남자는 하인(?), 여자들은 여왕이다. 늑장을 부리는 딸 둘을 깨워서 등교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15분. 통통한 언니에 비해 비교적 왜소한 동생은 자기 몸집의 반이나 나가는 가방을 둘러멘다. 학교에서는 자가용 등교를 하지말자고 외쳐대지만 안쓰러운 마음에 차를 태워주려는데 딸들이 굳이걸어서 가겠다고 고집피우면서 "아빠차는 고물이라 친구들이 보면 창피하고 뜨거운 바람이 나오지 않아서 차안이 더 춥다"고 거부한다.

"고물차는 아빠의 애마인데…"농담으로 되받으면서도 궁핍에서 조금 더 발전한 내핍생활로 하루하루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밴지라 지난 10년을 되돌아봤다. 결혼한지 11년이 지나도록 외식도별로 한적이 없고, 그 흔한 피서 한번도 제대로 가질 못했지 않은가. 과소비가 문제가 된다지만우리는 열심히 벌고 부지런히 모은 덕에 이나마 살만하지 않은가. 구태여 딸들의 작은 불만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차를 바꿀 시기가 넘었다는 마음이 급했다.

'한번 소비수준을 높이면 결코 낮추기가 쉽지 않다던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는 분수를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어느정도 즐기며 살 필요도 있어 차를 바꾸기로 작정했다.그동안 두말않고 따라와줘서 고맙기 그지없는 아내도 '우째 이런 일이…'를 연발하면서 싫지 않은 표정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10년 넘은 애마와 작별하고 새차를 기다리고 있다.며칠후면 영화에서나 봄직했던 철 지난 겨울바다로 가족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러면 나의 공주들이 묻겠지. "아빠 웬일로 새차에다 겨울바다 여행까지 생각했어요?" 그러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서세원 흉내를 내며 "오늘을 왠~지 겨울바다를 욕조삼아 고래가 내뿜는 물보라에 샤워하고 싶어서…"

(대구시 서구 평리1동 1046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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