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김한기)-고속도로 스케치

입력 1996-12-18 00:00:00

작은 차부터 매우 큰 트럭까지, 흰 차에서 검은 차, 깨끗한 차에서 더러운 차까지 많은 차들이 있었다. 구두에 흙한점 묻히지 않고 먼 곳까지 갈 수 있는 참 편리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중 무언가 깜박이는가 싶더니 차 한대가 바로 코앞을 스치며 멀어져 간다. 깜박이가 초록색이어서 혼동이 됐다. 그 차의 안전이 걱정이 되었다. 갑자기 뒤에서 찬란한 빛이 비추어지고 동물 수컷이 암컷 냄새를 맡듯 꽁무니에 바짝 붙었다. 환한 분위기는 좋아하지만 그런 류의 밝음은 싫었다. 2차선으로 들어갔다. 옆으로 스치는 그 차에는 특정한 종교인의 표식이 실내 백미러에서 대롱거리고있었다.

그 차는 다른 차에게도 그런 빛의 환함을 선물하며 앞을 향했다. 얼마 가지않아 그 운전자는 교통 경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쁘신 분 같던데. 다른 차에 개의치 않고 주관적인 속도로정속주행하는 차도 보였고 추월 후에는 반드시 2차선으로 들어가서 뒤차를 열심히 배려해 주는큰 트럭도 보였다.

반듯이 정리된 나무를 싣고 가는 짐차도 보였다. 나무라는 자연의 선물에 친근감을 느끼고 있을때쯤 소 몇 마리를 싣고 가는 차가 앞에 보였다. 줄을 짧게 묶어 놓았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껏움직이지 못했다. 도살장과 농사 일터중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주는 선한 짐승이기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소 한 마리가 갑갑했는지 머리를 흔들어 댔다. 날개만 달면 비행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성능 좋은 차가 또 옆을 스친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는굽은 길가에는 맥주병이 깨져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나는 오늘 고속도로라는 인생 항로를 달린것 같은 기분이다.

〈대구시향악장.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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