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의 '필름세계'-나폴레옹

입력 1996-12-17 14:04:00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에 있는 작은 섬 코르시카는 일찍이 루소에 의해 유럽을 공화제로 혁신할것으로 예언되었다. 그의 예언은 그 출신인 나폴레옹에 의해 증명되었으나, 나폴레옹은 공화제가아닌 제국을 세워 루소를 배신했다. 혁명공화국은 당시의 모든 유럽 왕에게 도전했으나 섬사람군인 나폴레옹 한 사람에게 굴복하고 황제 자리를 내주었다.

코르시카는 복수의 전통으로도 유명하다. 마피아의 고향인 시칠리아처럼 참혹한 복수극으로 역사를 피로 물들게 했다. 나폴레옹 역시 그 전통에 따라 복수에 복수를, 전쟁에 전쟁을 거듭했다. 복수나 전쟁은 범죄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국가를 위한 영광이었다. 그는 말했다. "내가 프랑스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가 나를 필요로 한다" "정복이 현재의 나를 만들고 정복만이나를 유지한다"그것은 권력에 대한 끝없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자신이 멸망함을 그는 몰랐다.

1769년 태어난 그는 15세에 파리 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지독한 섬 사투리 때문에 외롭게 6년간을 보내며 외곬으로 자랐다. 20세에 프랑스혁명을 맞은 그는 혁명을 혐오하여 민중을 '천민'이라고 경멸하고 무기력한 왕을 '바보'라고 욕했다. 그래서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다. 그는 칼과 총을든 군인이었기에 언제나 왕이 될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마침내 쿠데타로 황제가 되었다.영국해군을 격퇴시킨 공로로 24세에 이탈리아 원정군의 장군이 된 그는 로베스 피에르파의 궤멸과 함께 구속되고 장교에서 제명되기도 했으나 변절하여 시민반란을 진압하고 일약 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자기이익을 위해 로베스피에르에 붙은 것이지 정치적인 신념으로 그의 공포정치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1789년부터 시작되어 6년간 계속된 프랑스혁명은 대부르주아가 시민을 굴복시켜 끝났다. 군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대부르주아의 이익을 위해 국민공회를 강제 해산하고 헌법을 폐기하는 쿠데타를 단행했다. 그는 내정에서는 군사.경찰독재를 확립하고 외정에서는 정복전을 거듭했다. 그리고 로마식의 집정관제를 두는 헌법을 제정, 그 자신이 수석 집정관이 되었고 1804년 국민투표를하여 황제로 등극하여 10년간 재임했다. 그것으로 혁명은 끝났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봉쇄하고 그 봉쇄에 불참한 러시아를 침략했으나 파멸로 끝났다. 그리고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영국, 스웨덴이 프랑스에 맞서 프랑스를 이겼다. 전쟁이 끝나자 나폴레옹은 엘바섬에 유폐되었다. 루이 18세가 나타나 왕정이 부활했다. 바스티유 점령 20년만이었다.빈에서 유럽평화를 위한 회의가 열렸으나 언제나 '춤출 뿐이었다'.

나폴레옹은 섬에서 1년을 견디지 못했고, 프랑스 국민은 곧 왕가를 지겨워했다. 나폴레옹은 섬을탈출하자 왕은 도망갔다. 그러자 빈 회의의 춤이 멈춰지고 유럽은 모두 합쳐 다시 나폴레옹에 대항했다. 그는 워털루에서의 패배 이후 '백일천하'를 끝내고 다시 센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1921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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