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김문오)-얼어붙은 세밑

입력 1996-12-17 00:00:00

또 한해가 저물어 간다.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 트리, 거리 가득 울려펴지는 캐럴소리, 잇단 송년회와 망년모임이 세밑분위기를 더욱 들뜨게 만든다. 하지만 사회복지단체나 불우시설에는 온정의손길이 예년같지 않다. 언론사의 성금접수창구도 예외는 아니다. 도심엔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해 '사랑의 종'을 울리고 있지만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경기불황탓도 있지만 '뽀빠이사건'이후 더더욱 찬바람이 일고있다. 그렇다고 불경기와 '뽀빠이'탓만 하고있기엔 우리주위에는 소외받고 병들고 어렵게 지내는 이웃들이 너무 많다. 유난히도 추운 올겨울 온정의 손길마저 얼어붙은 세밑을 맞으면서 '자비심'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본다.

어려운 남을 위해 아무 조건없이 베푸는 지순한 사랑의 정신이 자비심이다. 그러나 이 자비심도마음속에 머물러서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식으로든 표출이 될때 참뜻을 갖는다. 이를 불교계에서는 바로 보시(布施)라고 하지 않는가.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따뜻한 정을 나눌수 있는마음의 여유야말로 자비심의 발로다. 하루저녁 수백만원을 술판에 날리면서도 몇푼 성금은 아까운 어른들이 있지만 한해 꼬박 모은 돼지저금통을 털어 성금으로 내는 고사리손, 부모와 자식에게 버림받은이에게 친핏줄처럼 사랑을 쏟아붓는 천사같은 사람들이 있다. 수용인원을 조작해 정부보조금을 착복하는 복지시설원장도 있지만 모닥불에 언 손 녹여가며 번 꼬깃꼬깃 구겨진 천원짜리 몇장을 자선냄비에 넣는 노점상 아주머니도 있다.

겨울방학을 맞아 호화판 해외연수 보내기 경쟁이 벌어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자녀 손잡고 정박아들 모여있는 보호시설을 찾아가 가슴으로 뜨거운 정과 참사랑을 나누는 학부모가 있기에 세상은 아직 아름답다. 바로 이렇게 '자비의 마음'으로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는한 아무리 추운겨울이라도 훈훈한 인정의 열기로 달아오를 것이다.

〈대구MBC 부국장대우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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