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김갑생씨 아니 조선이씨

입력 1996-12-13 14:46:00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죽은 줄만 알았는데…"

북한 탈북자로부터 46년전 국군으로 6·25에 참전했던 남편 김갑생씨(72)가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조선이(趙善伊·66·대구시 달서구 송현동)할머니. 이날 오전까지도 앞산 대성사에서 남편의 '극락왕생'을 빌던 조할머니는 속이 타는듯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조할머니는 19세에 김씨(당시 25세)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하지만 신혼의 단꿈에서 깨기도 전 남편 김씨는 조할머니 곁을 떠났다. 50년 7월 고향인 영천에서 국군에 입대,전쟁터로 나갔던 것.같은해 9월 전북 어느곳에서 안부편지를 보낸 뒤 남편의 소식은 끊겼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남편의 전사통지서가 날라왔다. "앞이 캄캄했지요. 하지만 시부모님 앞이라슬퍼할 수도 없었어요"

그러나 조할머니가 '팔자를 고치지않은' 이유는 언젠가는 남편이 돌아오리란 믿음 때문이었다. 수절46년. 하지만 올 6월 국립묘지에서 6·25전사자 명단에 남편 이름을 확인하고 조할머니는 가슴 한쪽이 다시한번 무너져 내렸다.

남편의 얼굴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조할머니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함께산 3~4개월도 남편이 공비를 잡으러 면방위로 차출돼 거의 집을 비운 탓이란게 조할머니의 변명(?)이다.

"오늘부턴 절에 가면 남편을 꼭 만나게 해달라고 빌겠어. 만나면 말도 못하고 눈물만 쏟을 것같애" 기약없는 기다림에 꽃다웠던 열아홉살 새색시의 머리엔 벌써 서리가 내렸다.한편 김갑생씨가 북한에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경산시 진량면에 살고 있는 여동생 김석준씨(70)등 김씨의 형제들도 감격의 울음을 터뜨렸다.

5남매인 김씨는 위로 누나 두명이 모두 영천시 임고면에 살고 있고 그밑으로 석준, 울산에 사는남동생 석진씨(63)가 있다.

여동생 석준씨는 "죽기전에 형제가 한자리에 만나 얼굴이라도 봤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기도하고있다.〈崔奉國·李大現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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