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칼럼 〈연세대 석좌교수〉"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읽혀지고 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이마골로지(imagology)'란 말을 만들어 쓰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이데올로기를 누르고 이마골로지가 승리를 거둔 시대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면 이마골로지란 무엇인가? 어떤 이념을널리 홍보하려고 할때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그 이념내용을 단순화하게 된다. 단순화할수록 홍보효과가 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단순화의 가속화가 시작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념내용은 몇개의 단순화된 구호와 이미지로 변하고 만다.
*이미지와 구호만의 난무
가령 마르크스주의의 경우를 들어보자. 홍보와 보급을 위해 마르크스의 선언은 단순화되고 또 단순화된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가 널리 알려지고 지상에서 강력한 힘이 되었을 때는 빈약하게연결된 대여섯개의 구호만이 남게되어 이데올로기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그리하여 이데올로기는 망치를 들고 미소짓고 있는 노동자, 정답게 손을 잡고 있는 흑인, 백인, 황인,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둘기떼 등속(等屬)의 이미지와 구호의 범벅으로 축소되고 만다. 즉 이데올로기는 이마골로지로 탈바꿈한 것이다.
쿤데라의 발언은 동구권에서의 직접적인 정치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어서 각별한 통렬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일부의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망명자 특유의 편벽된 정치관으로 다분히사적인 울분을 토로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체제를 넘어서 우리시대의 타락을 관찰하고 아파하는 진정한 의미의 현대 작가요 날카로운 지식인이다. 공산권에서의 이마골로지의 득세에 정나미가 떨어졌던 그는 이른바 자유세계에서도 비슷한 환멸을 겪어야 했다.
TV의 카메라를 의식하여 환자와 입맞춤을 서슴지 않는 정치가의 재빠른 연기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또 이와같은 순발력을 발휘하지 못하여 기아선상의 아프리카 촌락을 찾아가 인류애를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실패의 만회를 도모하는 희극을 작품속에서 풍자한다. 이마골로지야말로 우리시대의 '키치(저질작품)'인 것이다.
*대중조작 저급한 연기들
우리사회에서도 이마골로지를 통한 대중 조작과 자기홍보의 기풍이 만연되어 가는 징후가 농후하다. 시청각 대중매체의 위세 증가와 더불어 어떻게 보면 불가피한 풍조일지도 모른다. 넓은 의미의 '카메라'를 의식하고 민첩하게 행동하여 상당한 소득을 챙긴 '탤런트 지사(志士)'의 얘기도 심심치 않게 떠돈다. 그러나 개인적인 수준의 광대 행위는 오도적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크게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전체에 영향이 미치는 공적인 사안에 이르면 문제는 사뭇 달라진다.언제인들 태평성대가 있었을까마는 요즘 불안한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일차적으로는 경제의어려움에 연관되는 것이다. 금융 위기를 경고하는 외국 관측통이 있는가 하면 외채나 대외수지적자 액수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사실상의 노사 대립도 심상치 않은 양상을 띠우고 있다. 환경 오염에서 오는 생태학적 위기 상황도 피부로 실감하리만큼 심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대책도 없이 도처에서 산이 깎이고 농경지는 사라지고 있다. 우려하는 소리는 많지만 무언가 이루어진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깨어있는 국민의식
선거의 해가 가까워지면서 벌써부터 언론매체에서는 이른바 대권주자에 관한 화제가 한창이다.정치적 관심의 과열을 우려하는 사설 바로 한옆에 정치적 과열을 부추기는 기사가 보이는 것이우리의 언론풍토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마골로지의 과잉생산이나 과소비가 아니다. 만만치않은 21세기의 도전과 시련에 대처할 수 있는 비전의 정밀한 구상과 그 실천을 위한 국민역량의집결이야말로 당면과제이다. 국민을 우롱하는 것으로 끝날 공산이 큰 이마골로지의 과잉생산과과소비를 우리 모두 경계하자. 깨어있는 국민의 의식만이 이마골로지의 세뇌를 거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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