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 〈경북대교수·사회학〉"
얼마전 TV연속극 '애인'이 회자되더니 요즘엔 소설 '아버지'가 화제를 끌고 있다. 이 두가지 유행은 공통적으로 한국 중년남성들에게 자신의 위상을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듯하다.과거에 우리 중년남성들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꽤 안정된 지위와 역할을 누렸었다. 이들은 어엿한 가장으로서 윗세대의 비호 아래 아내와 자식들 앞에서 권위를 행사하였다. 그리고 직장에서는상사의 보호막 속에서 부하 직원들을 지도하는 데 애로점이 없었다. 실제로 중년남성들은 어느조직에서든지 실무에 가장 능하고 또 몸으로 부지런히 뛰어 명실상부하게 우리 사회의 중추적 집단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가부장적 기득권 상실
이처럼 혜택이 넘치던 자리가 이제는 흔들리고 있다. 중년 남성들은 피곤한 일상생활에 지쳐 있으며,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주눅이 들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치보는 처지에 놓여 있다.중년남성들이 비틀거릴수록 우리의 가정과 직장 또한 흔들거리며 사회 전반적으로도 무기력한 분위기에 휩싸여간다. 한마디로 오늘날 한국 중년남성들의 모습은 민주화의 뒤안길에서, 세계화의길모퉁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중년남성의 문제는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째 이런 일이' 생겼을까? 먼저 급격한 사회변화를 주된 원인으로 짚어볼 수 있다. 전반적인 사회변화에 영향을 누구라도 받기 마련이지만 기득권을 누려왔던 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주변적 위치에선 사람들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적응과 부적응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으나 중심부에 위치해 있을수록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 만큼 사회의 조그만 변화에서도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곧 세계화의 화두는 어학능력 배양이나 컴퓨터 숙달이라는 수행과정을 통해 중년남성들에게 삶의 고통을 안겨다주고 있다. 심지어 조기(명예)퇴직으로 인한 실업(失業)이 주어진 현실이다. 정부가 내놓은 노동법 개정안의 내용을 보더라도 근로자 중년남성의미래마저 밝지 않다.
*사회변화속 '치료'필요
또한 중년 남성들에게는 민주화의 열매맛도 달콤하지만은 않다. 일상적으로 가정과 직장에서 대면하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신세대의 발랄함에 대해 너그러이 수용하는 자세를 함양할 체계적 훈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웃어른들로부터는 제대로 다루지 못하느냐는 핀잔을 듣지만, 그렇다고 여성과 신세대를 옛날 방식으로 대하고자 하면 '쉰세대'로 낙인찍혀 오히려 무시당하기가 다반사다.바야흐로 한국 중년 남성들은 더 이상 '간 큰 남자'가 아니고 '간이 부은 환자'처럼 치유의 손길을 요하는 위기 세대이다. 환자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쾌유를 위해 노력해야 하듯이, 중년 남성들이 알량한 자존심을 포기하는데 망설이지 않는다면 현재 처한 위기는 앞으로 위험보다 기회를가져다줄 지 모른다. 개인적인 노력으로서, 자기가 겪는 어려움을 아내와 자식들에게 얘기하는 것을 체면손상으로 여기지 않아야 하며, 또 자신의 힘든 사정을 부하 직원들에게 털어놓는 것을 비굴한 짓으로 인식하지 않아야 한다. 바꾸어 말해서, 여태까지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하던 아동, 여성, 노인, 장애인, 빈민 등과 다를 바 없이 중년 남성도 이 범주의 하나에 속하게된 점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감·일할의욕 필요
분명히 오늘날의 중년 남성들은 전통적인 가치와 규범에는 거리감을 느끼고 동시에 새로운 관행과 절차에는 서투른 면을 지닌다. 그리고 이들의 위기의식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위축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금의 정치혼란과 경제불황은 이런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촉매역할을 한다고 본다.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이들에게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고 일할 의욕을 심어주는일이 급선무이다. 정치, 경제를 위시한 우리사회의 원로 지도층이 삶의 희망을 안겨주는 언행과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을 펼쳐나갈 때 비로소 중년 남성들도 허리끈 졸라매고 다시 뛰려고할 것이다.
가부장제적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더불어 살기 위해 애쓰는 중년 남성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한다.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자. 이른바 세대교체의 진정한 의미를 이런 노력에서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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