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신백호주의 망령 살아나나

입력 1996-12-04 14:21:00

호주에 신백호주의(新白濠主義) 인종차별논쟁이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 난듯 뜨겁게 달아오르고있다. 아시아계 이주민과 관광객의 증가등으로 한동안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던 호주에 신백호주의 조짐이 다시 일고, 이를 두고 찬반양론이 세차게 일고 있는 것은 지난 3월 대선서 노동당의하워드총리가 집권하고서부터. 새내기 여성의원 폴린 핸슨이 첫의회연설서 '아시아인이 호주를짓밟고 있다'고 한 충격적 발언이 계기가 된 이 논쟁은 결과적으로 호주의 국제적 고립을 자초,자국내 경제침체의 가속은 물론 아시아 각국들로부터도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호주 신백호주의 인종차별논쟁의 시말을 알아본다.

지난 9월초 이래 호주 국내는 물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켜온 인종차별주의 논쟁의 시작은 9월10일 무소속 국회의원 폴린 핸슨의 국회 처녀연설로써 비롯되었다. 그 다음날 각종 일간지들이 앞을 다투어 보도한 핸슨 의원의 연설문은 과히 파격적인 내용이었다.핸슨은 전 키팅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던 '다문화주의'정책을 파기해야 하며, UN으로부터의 탈퇴,외국원조 일체 중단, 그리고 18세이상 청소년들의 고교 졸업후 의무적 군입대를 주장했다. 핸슨은호주가 아시아인들에 의해 짓밟힐 위기에 놓여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가지고 있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호주에 동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진정한 다문화국가는 절대 실현되지 못한다는 강한 의견을 피력했다.

핸슨은 아시아인들에 대한 공격적 발언 뿐만 아니라, 호주 원주민들이 정당한 이유없이 과도한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음은 물론 호주가 일본,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핸슨의 이와같은 파격적 발언은 즉각적인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9월초 핸슨의발언이후 핸슨이라는 이름과 인종차별주의라는 단어는 일간지에 매일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으며 각종 TV와 라디오 프로그램, 강론회등의 토픽이 되고 있다. 과히 호주 전체가 핸슨병을 앓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렇게 시작된 인종차별주의 논쟁은 초기에는 단지 서로 대립되는사회 각계의 반응이 보도되는다소 산발적 분위기를 띠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핸슨을 지지하는 여론과 지탄하는 여론이팽팽히 맞서 어느 한쪽도 가라앉을 줄을 모르고, 논쟁은 나날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핸슨을 지탄하는 여론은 파괴적이고 무지한 핸슨의 발언과 같은 의견도 보호하는 국회의원의 특권을 비판하는 반면, 지지론자들은 언론의 자유를 외쳤다. 정치인들은 서로 핸슨을 따돌릴 것인지지지할 것인지 계산하기에 바빴다. 그도 그럴것이, 핸슨의 발언이 사실에 바탕을 둔 근거있는 발언이든 아니든 국민들의 다수가 핸슨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었다.올해 3월 선거로 키팅의 뒤를 이은 하워드 총리는 전국이 인종차별논쟁으로 뜨거운 가운데 핸슨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지탄하라는 사회 각계의 압력에 맞서 자신은 언론의 자유를 옹호할 뿐이라며 논쟁에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이 두려워했던 대로 아시아인들이 거리에서 침뱉힘을 당하거나 멸시당하는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아시아 관광객들이 호주 방문을 대거 취소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오랜 노동당 집권 이후 자유당 소속 하워드가 총리 집권함에 따라 사회 구석구석에서 많은 변화가 예상 되었던 것과는 달리 호주국내는 물론 아시아권에 신인종차별주의라는 큰 파장을 몰고 온것은 하워드의 인물 됨됨이에 우선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첫째 하워드와 키팅은 인물 자체가 전혀 다르다는 평이다. 키팅은 국민들이 좋아 하든 말든 자신의 의지대로 나라를 이끌어 가려는 강한 인물이었고, 하워드는 자신의 리더십보다는 국민들의 의견이 옳든 그르든 따라가는 나약한 인물이라는 비평이 이번 인종차별논쟁 속에서 나왔다. 국민들이 보기에도 키팅이었다면 당장 펄쩍뛰며 강하게 지탄했을 핸슨의 의견을 하워드는 오늘까지도핸슨의 이름을 들어 지탄하기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키팅이 '아시아 집착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호주는 아시아의 일부이며, 아시아의 일부로 살아남고 번영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그러한 태도는 각종 정책 특히 그의 '다문화주의'정책에서 두드러졌었다.

하지만 하워드는 호주는 유럽의 일부이며, 아시아와는 꼭 필요한 만큼만 거래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워드는 호주가 키팅 정권하에서 할말을 못하고 살았다며, 자신은 호주를 느긋하고 편안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번 핸슨의 발언에 대해서 하워드는 언론의 자유라는 명목으로침묵하고 방관하고 있는 중이다.

3월선거 패배이후 약속대로 정치계를 떠나 NSW대학의 방문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키팅은 "국익을 편견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임무"이며, 이 중요한 시기에 피부색을 놓고 운운하는것은 역사의 수치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새로이 불붙은 인종차별주의가 전세계의 세계화 움직임에 따른 부수적인 반응이라고 지적하며, 이 속에서 불안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약한 집단을 희생양화 하려는 것이라고 말해 하워드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번 핸슨 논쟁은 호주에 무엇을 남겨 주었는가? 설문조사에 따르면 핸슨의 국회연설이후 아시아계 이민자들에 대한 인종 차별적 공격이 2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아시아 언론들은 각기 자국 국민들이 호주로 자녀들을 유학보내기를 꺼려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호주경제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민자들은 달리 뾰족한 반응을 보이지못하고 있다. 이는 뚜렷한 아시아 이민자들의 압력단체가 없고, 비슷한 소수가 있다 해도 제대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하면 한국인들은 사회 교과서에서 배운 '백호주의'를 떠올리게 되듯이 호주는 오랜세월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혀왔다. 그러한 호주에서 '다문화주의'의 정착은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요할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시행착오가 진행되는 동안에 누가 얼마나 상처를 입느냐는 것이다.옵터스 비전의 CEO 제프리 커즌스는 "인종차별주의는 정치 경제 사회문제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가 사악하기 때문에 배척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이러한 인종차별을 공식적으로지탄할 것을 종용하며 "악은 착한 자들이 침묵할 때 번성한다"고 말했다.

(시드니〈호주〉李周恩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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