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심(金心)과 세자 책봉

입력 1996-11-29 00:00:00

요즘 한국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정답을 미리 알고 싶어하는 국가적인 퀴 즈 문제는 무엇일까.

OECD가입이 우리에게 유익할 것인가 부작용만 더 클것인가라는 문제나 북한이 잠수함 사과를 할까 말까 같은 문제가 아니다.

바로 대권후보 .

정답 알아봤자 하와이 여행권 한장 안붙어 있는 실속없는 퀴즈인데도 웬일인지 사람들은 둘만 모 이면 꽤나 심각한 얼굴로 누가 될것 같으냐 는 뻔한 질문들을 내놓고 퀴즈게임들을 하고 있다. 상대방이 정답을 모른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퀴즈놀이를 즐기는 듯한 이상한 사회 분위기다. 그 러한 묘한 퀴즈게임은 언론쪽도 마찬가지여서 거의 하루도 걸르지 않고 똑같은 얘기를 오늘은 이 렇게 뒤집고 내일은 저렇게 뒤집어 가며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의 보도를 남발해 내고 있다. 앞으로 1년내내 김심(金心)과 낙점이야기만 시시콜콜 쓸 작정인가 싶을 만큼 대권후보 편중보도 성향을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어느 후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는 정치인이 청와대에 불려갔다 온뒤 폭탄주를 마시면 뭔가 불 리한 언질을 받은것 아니냐 고 쓰고 또 다른 후보가 청와대 면담뒤 안색이 좋아 보이면 기(氣) 살릴 말을 들었을 것 이란 식으로 쓰는 대권 퀴즈 기사가 과연 지금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긴요 하고 우선된 정보가치가 있다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

현직 대통령의 기분과 낙점의지 , 마음(心)의 향방에 따라 후임 대통령의 계승 문제가 좌지우지 된다고 은연중 인정하고 있는 듯한 응고된 사고가 아닐수 없다 .

물론 정치제도가 낙점에 따른 후보 경선, 그리고 출마와 선거라는 대권과정을 내다본다면 현직 대통령의 마음(心)이 원천적으로 출발점인 경선단계에서 손보기에 따라서는 좌지우지할 여지가 있고 그것이 선거에 까지 계속 이어지면 결국 국민 심판 직전까지 영향력을 끼친다고 말할수 있 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 한 민주국가의 통치자 계승이 왕조시대의 세자책봉같은 왕심(王心)에 의한 지명 으로 결정돼서는 안되며 그럴수도 없다는 점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경선이 정말 민주적인 절차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현임 대통 령의 심(心)은 개인의 희망사항일뿐 어떤 영향도 줄수 없게 된다.

결국 왕심(王心)에 의한 세자 책봉식의 후보 결정은 비민주적이나, 정치 현실은 김심(金心)에 들 어야 한다는 모순에 부딪히는 셈인데 해법은 한가지.

이시점에서 김심이 독불장군은 미래가 없다 거나 언질소문 같은 얘기들이 나오지 않도록 공정 한 처신을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국민과 후보 모두에게 심어주는 길 뿐이다. 세간에서 회자되는 퇴임후의 보장 같은 정치역학의 추를 김심의 저울 끝에 매달아 두고 기울기 를 재고 있다면 그것 또한 부질없는 일이다. 왕심에 의한 세자책봉도 끝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는 교훈은 역사의 거울에서 쉽게 비춰 내 볼수 있다. 여덟째 아들 방석에게 세자책봉의 낙점 을 했지만 방원의 칼날앞에 왕심의 권능이 짓밟혔던 이태조.

권력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아무리 내사람이라고 믿고 낙점한 인물도 대권이라는 권력앞에 서면 형제도 친구도 가신도 변할 수 있다. 맹세도 언약도 허무하게 무너진다. 먼 역사를 돌아볼 것도 없다. 전심(全心)은 노심(盧心)을 잘못 읽었고 노심(盧心)은 김심(金心)을 잘못 읽었던 오늘의 정치 현실 만 봐도 정답은 나와 있다.

낙점의 효력도 붓을 쥐고 있을 동안의 일. 1년뒤면 어느누구도 붓끝간대로 따라와 주지 않는다. 김심은 누구를 낙점해야 퇴임후 더 안전하겠느냐는 대권퀴즈에 마음쓰기 보다는 자유경선에 의한 민주적 후보결정을 위해 현임 통치자로서 공명정대하게 도와줄일이 무엇인가에 마음 쓰는것이 진 정한 대도무문(大道無門) 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빈 마음으로 큰 길을 가면 정치보복의 우려는 저절로 사라진다. 보복이 있어서도 안된다. 어쩌면 노련한 정치가인 김심은 이미 그런 쪽으로 속마음을 정리한채 언론의 대권퀴즈보도와 예 비후보들의 처신들을 보면서 한심하다는듯 혀를 차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한 일이다. 또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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