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데를 빼놓고 96시즌을 얘기하지 말라'
한국 축구사에 10-10 클럽(득점-도움)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국내 진출 5년만에 최정상의 자리에 우뚝선 유고(보스니아) 용병 라데(26).
라데는 올시즌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며 득점 13-도움 16개를 기록, 골든볼.골든슈.도움상등 각종상을 휩쓸었다. 팀이 우승을 하지 못했고 용병에게 인색한 우리 축구계의 풍토를 감안할때 이런상들의 수상은 얼마만큼 그의 활약이 두드러졌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체력적으로 최상의 컨디션이고 스피드가 붙은 것이 좋은 성적을 내게된 바탕이 된 것 같아요.또 전반기에 황선홍이 빠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열심히 뛴것이 득점을 많이 하게 됐고 후반기에는 황이 복귀해 어시스트에 주력했습니다"
1백83cm 81kg의 탄탄한 체격에 1백m를 12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라데는황선홍의 표현대로 '이상적인 스트라이커'라는 것이 축구관계자들의 평가다.
빼어난 드리블과 페인팅, 3번 찬스를 한번은 골로 연결시키는 결정력에다 원래 미드필더 출신으로 시야가 넓어 어시스트에 남달리 강하다.
이런 기량적인 면외에 빠트릴 수 없는 것은 불타는 그의 '투지'다. 세계적으로도 거칠기로 소문난한국 축구무대에서 그가 보여주는 근성있는 플레이는 국내 선수들을 압도하고 오히려 코칭스태프가 "제발 좀 참아라"고 만류를 하는 정도다.
심한 태클이나 와일드 차징을 당하면 라데는 그냥 있지 않는다. 고함이나 욕설은 물론 기어코 따라가 자신에게 파울을 범한 선수를 거꾸러뜨리기도 한다.
올시즌은 코칭스태프의 주문에 따라 자제심을 발휘하여 단 1개의 경고와 퇴장도 없이 보냈지만지난 4년 동안 경고 10번.퇴장 2번등으로 화려한 훈장(?)을 달았다.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거죠. 제 플레이가 다소 거칠게 보일수도 있지만 위축당하지 않고 오직 '승리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경기를 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라운드만 벗어나면 라데는 그야말로 순한 '양'이다. 좀처럼 화를 내는 일이 없을 뿐아니라 지극히 가정적이며 자상하다.
선수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특히 포항에 같이 있는 '드라간'.'시모'등 영어가 서툰 다른 용병들의 대변자 노릇을 마다 하지 않으며 가정에서는 자상한 남편과 아빠로서 '만점'가장이다.최근 '유고로 돌아간다'는 설에 대해 라데는 "I never said that(절대 그렇게 얘기한적 없다)"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그는 "유럽의 큰 팀에서 뛰고 싶은 것은 사실이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체력적으로 절정기인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을 밝힌 것이 잘못 전해졌다"고 말했다.
올 12월까지가 계약 기간이어서 포항과의 재계약 여부에따라 거취가 달라질수 있으나 구단 관계자들이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고 라데도 "한국에서 포항만한 구단은 없다"고 말해 별다른 이변이 없는한 포항 유니폼을 계속 입을 전망이다.
라데의 연봉은 9만5천달러(약8천5백만원)로 수원 삼성 바데아의 11만달러(약 9천9백만원)에 못미치나 95년 재계약 당시 보너스 형식으로 30만달러(약 2억7천만원)를 받았고 아파트와 승용차까지제공받아 연간 수입이 2억이 넘어서 용병뿐만아니라 국내선수를 통틀어 사실상 프로축구 최고의대우를 받고 있다.
'귀화를 해서 한국 대표를 할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 라데는 "확실히 대표가 보장된다면 모르겠으나 반드시 그렇다는 보장도 없고 유고에 부모형제들이 있는 현실에서 쉽지않은 일"이라고 말해 귀화는 어려울 것 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유고에서 청소년대표(90년)와 올림픽대표(91~92)를 거치며 주목받던 라데가 한국으로 오게된 것은전쟁때문이었다.
한창 축구 선수로서 성장을 거듭하던 92년 유고내전이 발발하자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외국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던 라데는 당시 대우에 있던 유고 출신 선수 우지체비치를 통해 한국을 알게됐다.
이후 우지체비치와의 계속적인 접촉으로 꾸준히 한국에 대한 정보를 듣던 라데가 포항으로 오게된 직접적인 계기는 축구 에이전트로 활약하던 김인권씨(전 포철공고코치)의 눈에 띄어서였다. 동구권을 중심으로 용병을 물색하던 김씨가 유고 베오그라드의 젤레주이차 팀에서 뛰고있는 라데를발견하고 포항에 의뢰해 입단 테스트를 받게 한 것이다.
당시 이회택 감독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은 22세의 어린나이의 라데를 기량보다 근성을 높이 평가, 한국무대에 적응할 장래성을 보고 받아들이게 됐다.
입단 첫해 라데는 40경기에 출장, 득점3-도움3으로 미미한 성적을 거뒀으나 93년 득점9(6위)-도움4, 94년 득점22(2위)-도움6으로 일취월장하며 일약 포항에 없어서는 안될 주포로 떠올랐다.특히 94년 7월30일 동대문구장에서 벌어진 LG와의 경기에서 프로최초로 한경기 4골을 넣는 대기록을 세운데 이어 11월5일 또다시 LG를 상대로 4골을 터뜨리는 활약으로 축구 관계자들을 깜짝놀라게 했다.
황선홍과 호흡을 맞춘뒤로 '황금의 투톱'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결국 올시즌 '최고의 선수'가 됐다.
라데는 한국 축구에 대해 "선수들이 쉼없이 뛰는데 놀랐다"며 "50분간 끊임없이 뛰는 체력적인축구는 좋으나 경기의 경중에 관계없이 지나치게 무리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수준에 대해서는 "이탈리아.스페인등 축구 선진국과는 분명 거리가 있지만 스위스등 중진국 수준과는 비슷하고 일본 축구보다는 분명 한 수 위에 있다"고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다.라데가 한국 축구에 있어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지나친 스파르타식 조기 교육과 선수들의 조로현상.
우리의 기준으로 보아서는 늦은 나이인 13세에 선수 생활을 시작한 라데는 10세 정도의 어린이들이 선수로 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축구를 취미로 즐기다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선수가 되는 것이 적당하고 그렇게 되면 선수 생명도 길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라데의 축구에 대한 정열은 남다르다. 끊임없는 연습, 그라운드에서 불타는 투지는 그를 따라갈선수가 없다. 뿐만아니라 국내의 모든 일간지.방송을 모니터 하는데다 인터넷을 이용하는등 각종자료 수집에 대한 정열도 놀랄만하다. 또 각 구단에 흩어져있는 용병선수들,유고에 있는 가족 친지들을 통한 정보 교류도 빠트리지 않는다. 가히 국내외적인 축구정보에 박사급 수준이다."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오직 스포츠맨으로 살고 싶다"
오직 '진정한 프로로서의 삶'이 라데의 목표다.
〈허정훈기자〉
댓글 많은 뉴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