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신선함과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아득한 옛 일과 감정들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천광호(千光鎬.42)씨. 본 적조차 없는 옛 기억(?)을 더듬어 화폭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그 또한 그렇다.
"우리 산천에 널려있는 화강암이나 암각화등 오래된 사물에서 역사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듯한느낌을 받곤 합니다. '기억의 여행'은 아득한 과거에로의 몰입을 통해 지극히 한국적인 편린(片鱗)들을 찾고자 하는 상상속의 여행이죠"
'기억의 여행'. 낭만이 물씬 풍기는 천씨의 테마는 다소 차갑게 느껴지는 그의 외모만큼이나 뜻밖이지만 넘치지않을 정도의 감상(感傷)이 깃들여 좋다.
캔버스대신 열을 가해 견고하게 만든 압축 스티로폼위에 전통 닥종이를 발라 돌의 질감을 살린그의 화면(畵面)엔 연꽃과 도깨비, 사당, 새, 사슴등 민화와 설화, 전설등에 내재한 우리 고유의이미지들이 부조처럼 형상화돼 실제의 돌을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84년 경북도 미술대전 특별상을 받고난 후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며 웅장한 유럽문화를 체험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더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졌으면서도 초라하게 맥을 이어가는 우리 문화에 대해 새삼스런 애착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래서 일찌감치 '세계화'에 눈을 떴을까. 지난달말 오랜 권위를 지닌 프랑스 '살롱 도톤느'전에초대되는등 자주 해외 전시를 가져온 천씨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조금은진부하지만 변함없는 진리에 동의한다.
82년 영남대 회화과 졸업후 지금껏 10번의 개인전을 거친 그는 질박한 형태와 오랜 풍상의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림을 통해 옛 사람들이 한번쯤 가졌음직한 삶에 대한 그리움과 전통에 대한 향수를 형상화하느라 여념이 없다.
한때 사실계열의 민중미술 그룹 '임술년' 멤버로 현실참여적 작업에 매달리기도 한 천씨는 그의부친이자 국전 초대작가를 지낸 서양화가 천칠봉씨(84년 작고)로부터 항상 새로운 창작을 모색하는 화가 기질을 물려받은 것 같다며 멋적은 웃음을 띤다.
"과거의 한국적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내는 작업이 녹록치 않아요. 앞으론 한국성을 재현하는데 그치지않고 해외미술계에 우리 사회의 현실적 측면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무엇인가 확실한 결론을 위해, 가슴속에 감성의 느낌표들을 차곡차곡 쌓기 위해 오늘도 나는 작은 배낭 하나 둘러메고 조상의 숨결을, 얼을, 민초들의 소박한 미소를 찾아서...떠난다. 신경림의시 '그림'을 읊조리며'
성큼 다가서는 겨울. 자성(自省)과 준비의 계절에 적당히 절제된 성품의 그가 자신의 작업노트에적었듯,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을 한보따리 짊어지고 어디로 또다른 '기억의 여행'을 떠나게 될지…기다려 보자.
〈金辰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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