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진흥의 원칙"
며칠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비리는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가난한 시인과 작가, 화가, 음악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위해 어렵게 마련한 기금을 그 직원들이 몽땅 그들끼리 갈라먹고 있었다면 이것은 엄청난 비리이다. 그동안 진흥원 직원들이 하는 일 없이 상식 밖의 높은봉급을 받고 있다는 것은 문화계의 공공연한 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정년퇴직시 10억원에서 14억원에 이르는 퇴직금을 받아챙기는 보도에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2천5백억원의 문예진흥기금은 영화관을 찾는 키 작은 연인들, 공원에 간 시민들, 사적지를 구경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들의 주머니를 털어 조성한 것이다. 그런 귀한 돈을 2실3국 14부라는 방대한 기구에, 수많은 심의위원회를 만들어 그 직원들을 먹여살리고 호사시키는데 탕진해왔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 1년에 한번 시인과 소설가들이 이미 발표한 작품을 몇개 골라 아무도 읽지않을 책으로 묶고, 재수록료로 일, 이십만원씩 나눠주면서 인사하러 오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는 그런 직원들이다. 고압적인 시혜자의 모습으로 명목 뿐인 사업을 하며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창작지원금 엉뚱한 지출
문민정부는 출범 이후 개혁이란 논리로 군과 기업과 대학등에 많은 압력을 가해왔다. 국정감사를 보는 국민들은 똥싼 놈이 성낸다는 옛말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이런 고(高)비용 무(無)효율의 정부 산하기관들을 여태껏 방치하고 따로 어디를 개혁하겠다는 것인가. 더욱 흥분되는 것은 이런 방만한 운영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점이 시정되기 어렵다는 관측 때문이다. 엄연히 법으로 정해진 퇴직금 규정을 어떻게 고치겠으며 문예진흥원 노동조합이 가만 있겠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10억원 이상의 퇴직금을 받아챙기는 준공무원들의 노동조합이란 것이 도대체 어떻게 용납이 되는지 묻고 싶다.
진정한 문예진흥은 정부가 문예활동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예술작품에 대한 민간의 내수(內需)를 촉진시켜주는데 있다. 정부 자신이 방대한 기구를 방만하게 운영하며 정치색 강한 소수의 명망가를 지원하는 현재의 상황은 전혀 이상과 거리가 멀다. 제발 정부가 문예진흥 좀 안 해줬으면 좋겠어 하는 젊은예술가들의 푸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장 성공한 문예진흥으로 평가되는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는 정부 자체가 없었다. 신곡 의 단테와 군주론 의 마키아벨리, 지오토와 보티젤리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낳은 피렌체는 1459년 당시 인구 7만명의 작은 도시였다. 이후 500년동안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여 5천만 이탈리아인을먹여살린 이 소도시의 빛나는 예술은 오직 피렌체 시민들의 비판과 예술에 대한 애호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피렌체인들은 가혹하리만큼 공개적인 비판으로예술가들을 격렬하게 경쟁시키고 메디지가를 비롯한 유지들로 하여금 계속 작품을 사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경쟁과 내수만이 문예진흥의 영원한 원칙인 것이다.
예술가를 망치는 환경
경제적인 불안속에 오직 자신의 재능과 열정만을 믿고 비판과 모함과 시기의아수라장을 헤쳐나갈만한 인간이 아니면 처음부터 예술은 할 수 없다. 모든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잊고 작품에 매달려 집요하게 작품만을 추구하는 순정이 예술가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문예정책에는 정부의 리더십이 필요없는 것이다.정부의 어설픈 개입은 창조성이 결여된 예술가들의 카르텔과 담합을 조성하며공정한 경쟁을 방해할 뿐이다. 저마다 자기 예술에 책임을 진 예술가가 제각기역량을 발휘하도록 옆에서 여건만 조성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이 점 이사건을 경험한 정책 입안자들이 깊이 재고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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