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자에게 듣는 오늘의 北韓

입력 1996-10-16 00:00:00

"남쪽사람 북한 너무 모른다"

북한에서 간부물자보급소와 4.25 담배공장 농장원으로 근무하다 지난 95년 12월 13일 귀순한 이순옥씨(49.여)와 함께 북한주민들의 생활상에 관해 대담을 가졌다.

이순옥씨는 최근의 잠수함 침투사건과 같이 남북관계가 긴장되면 북한의 일반인들은 준 군사훈련 강화, 조직생활을 통한 사상교육이 강화되며 비상식량 비축명령이 하달되는등 생활고가 더욱 심해진다고 증언했다.

-먼저 북한에서의 생활과 귀순경위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아버지가 일제시대 항일운동에 가담했다는 내력으로 북한에서 출신성분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함경북도 은성군에 있는 간부물자보급소에 근무했습니다. 간부물자보급소는 북한의 당간부등 고위층들에게 생활필수품에서부터 TV, 냉장고등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각종 물자를 보급하는 곳입니다.

그 덕분에 중국에 여행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다녀와서 간부에게 뇌물을주지않아 미움을 사고, 급기야는 준 정치범수용소인 교화소에 끌려가 생리적 욕구까지 통제되는 비인간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풀려난 이후에도 비적대계층으로 분류돼 끊임없는 감시를 받아왔습니다.

이를 견디다 못해 지난 95년 12월 아들과 함께 북한을 탈출, 귀순했습니다.

-지금까지 남한 생활은 어떻습니까. 불편은 없습니까.

▲처음에는 북한의 생활방식과 너무 달라 어리둥절했습니다. 남한이 잘 산다는것은 북에 있을때 가끔 남한의 사회교육방송을 통해 알고는 있었으나 이정도로발전했는지는 몰랐습니다.

동포들이 따뜻하게 보살펴주어 잘 살고있습니다. 서울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아들과 함께 지내고 있으며 주로 강연회등에 나가 북한실상을 알리는 일을 하고있습니다.

남한생활이 불편한 것은 없습니다만 간판들이 영어로 표기되어 잘 알지못하는것이 문제입니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긴장돼 있는데 현재 북한의 분위기가어떠하리라고 봅니까.

▲남쪽 사람들은 북한을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미 푸에블로호 사건이나 도끼만행사건등 긴장관계가 형성됐을 때 항상 이를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는데 이용해 왔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내부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려는것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은 지금쯤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남한의 책임으로 돌리며 전쟁분위기를 조성하고 등화관제, 통행제한, 비상식량 비축지시를 내리며 긴장을 조성하고 있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자기네들이 잘못했으니 보도를 제대로 안하고 남쪽에 대한 위협에만 열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사람들은 실제 전쟁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북한에서는 전쟁을 언젠가는 한번은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50여년동안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전쟁은 언젠가 한 번은 해야하는것 아니냐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먹을 것, 입을 것도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전쟁이 터지고 통일이 되면 뭐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주민들의 생각입니다.

-전쟁이 터지면 북한주민들은 생활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북한 당국에서는 먹을것 문제가 어려운 것이 남한의 침략위협에 대비해 군수산업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래서 북쪽에서는 못사는 것이 남한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통일이 되면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남북교류가 진척되고 평화무드가 조성될 때도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당의 지침이 있습니다. 평화분위기가 조성되면 될수록 군대는 전쟁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통일은 결코 평화적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주민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금 식량난이 굉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식량을 배급기준에 의해 할당하고 있는데 당간부등 고위직을 제외하고는 배급량 전부가 배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들에 나는 쪽같은 것을 모아죽을 끓여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농촌에는 들녘에 먹을 것이 많아 그래도 나은편입니다만 중소도시 사람들은 그야말로 심각한 실정입니다.

-북한도 농촌지역이 많은데 자급자족이 안됩니까.

▲물론 농촌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도 자기것이 안되니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다. 텃밭 이라는 개인소유 땅이 있는데 주민들이 여기에훨씬 열심히 일합니다.

한때 북한당국이 자본주의적인 제도를 도입하려다 그 간부가 좌천됐다는 말도들었습니다.

70년대초까지는 사정이 괜찮았습니다. 7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경제사정이 악화되어 30년은 후퇴한 것 같습니다. 남한은 못먹고 헤어진 옷 꿰매입는 사람없지 않습니까.

김일성이 쌀이 곧 공산주의다 라는 말을 했는데 먹을 것이 풍족해야 공산주의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들어 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탈북자가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김정일에 대해서 북한주민들의 지지도는 어느정도입니까.

▲김일성에 대해서는 그래도 사람들이 지도자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에 대해서는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왕의 아들이면 무조건 왕이 되느냐는 불평입니다.

-북한 젊은이들의 생각이 많이 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북한 젊은이들의 고민도 함께 말씀해주십시오.

▲젊은 사람들은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조직차원의 일보다 개인의 이익을 생각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중국의 조선족들을 통해 밀수를 하는 일에 눈을 뜨고 있습니다. 연애를 하는 젊은이들도 예전에 비해 훨씬 많아졌습니다.

중국 조선족이나 해외유학생들이 들어오면서 남한이 잘살고 있다는 사실도 점차 알려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취직하여 집마련 하는 것이 젊은 사람들의 고민이라고 들었는데 북한에서는 당에 가입하느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당에가입해야 취직도 잘되고 좋은 사람도 구해 결혼할 수 있으니까요.

-당간부와의 뇌물문제로 귀순하셨다고 했는데 북한사회의 부패상을 몇가지 말씀해 주십시오.

▲당간부등 고위층들은 모르겠지만 뇌물이 아니면 좋은 물품을 보급받거나 여행허가서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진급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 이런 부패에 제일 피해를 보는 층이 노동자입니다. 노동자들은 그래서 술타령이 늘고 있습니다. 뇌물을 바치려고 해도 바칠 돈이 없으니까 남보다 잘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뇌물만 바치면 밀수도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총련 사태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북한은 남한을 대단히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주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그러나 남한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매우 관대하게 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행동을 보면 안타까운 면이 많습니다. 남한에 와서 보니 북한은 완전히실패한 체제입니다. 의식주등 기본적인 민생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제도 아닙니까.

-남한에서의 장래희망은 무엇입니까.

▲남쪽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일해 잘 살아 보고자하는 각오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생활이 안정이 되면 가게나 하나 차리고 싶습니다. 같이 귀순한 아들이제가 전공한 전자공학을 계속하고 싶어해 대학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북쪽에 돌아가 내가 이렇게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95년 12월13일 귀순 △63년 8월 청진시 라남구역 라흥기계공고 졸업 △66년3월까지 함북 온성군 동서리 협동조합 통제원 △68년 1월~70년 4월 함북 온성군 남양유업 탁아소 경리원 △86년 1월 온성군 상업관리소 65호 공급소 책임자△92년 11월 구르장 수감, 개천교화소 수감 △94년 2월 온성군 산성리 4.25호담배농장 농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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