每日春秋

입력 1996-09-30 14:29:00

연중 보름달이 가장 아름답고 환하여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했다지만 지금도 추석에달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다들 고달프고 힘들게 살던 시절, 신산스런 삶의 갈피에 끼어있던 그 환한 보름달의 명절은 이제 나이 든 세대의 희미한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있다.고스톱과 연예인들이 대신 놀아주는 TV의 시청 약식차례와 가족나들이로 명절 풍속이 바뀌는데밤하늘의 달을 보고 소원이나 복을 빌 마음이 들리 있을까. 그래도 전 국토를 몸살나게 하는 민족대이동 을 보면 고향가는 길을 따라 사람들의 마음은 다시 올 수 없는 그 시절로 가 보는게 아닌가 싶고 내 마음도 그 길을 따라 간다.

당시 수준으로 살림살이가 그리 궁핍하지 않았는데도 생일이나 되어야 기름발라 구운 김, 노릇노릇 구워진 갈치를 먹을 수 있었던 내 어린시절의 추석은 황홀했다. 무엇보다도 추석빔 -요즘 아이들은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나 있을까-으로 새옷을 얻어 입을 수 있었으니까. 추석이 가까워지면 어머니가 속곳 안주머니를 제법 두툼하게 채우시고 일곱이나 되는 자식들의 추석빔을 해주러나가실 날을 우리는 목을 빼고 기다리곤 했다. 어머니 치마꼬리를 잡고 흥분해서 큰시장에 따라가던 일, 오래 입으라고 사주신 헐렁한 치수의 새옷과 고무냄새 산뜻한 새신발 따위를 머리맡에놓고 누워 잠도 못자고 흥분했던 기억, 어는 해인가 어머니의 그 요술주머니를 소매치기에 털려기절할뻔 했던일….

다시 올 수 없는 시절, 사라져 가는 것들은 더 애틋하고 아름답게 기억되는 법인지 생활은 지금보다 궁핍했어도 마음은 휠씬 쉽게 행복해질 수 있었던 시절을 그립게 떠올려 본다.〈경북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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