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존재증명은 무엇일까.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지만 우리는 이제 이름도 업적도 아닌 바로 카드를 남기고 가는 것은 아닐까.
학교에서 새로 발급해주는 다목적 IC카드를 받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카드를 지갑에 집어넣으려고 보니 은행 신용카드, 백화점 신용카드, 전화카드, 자동차주유카드, 교원공제회 카드, 비행 마일리지 카드로 칸칸이 두개 세개 카드를겹쳐 끼워놓은 주머니 많은 지갑이 더이상 수용불능의 상태다.
책상서랍안에도 고객유치용으로 반은 써보지도 않은 카드가 수북하다. 의류매상카드, 심지어 동네의 미장원과 화장품가게의 카드까지…이러니 누군가 자신이죽고 나서 아들이 한달만 카드대금 지불을 책임져주면 자신의 인생은 제대로마감된다는 말이 그저 하는 농담으로 여겨지지 않고 새삼 실감으로 다가온다.
과학기술이 아무 장애나 제동장치없이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진전된다면 카드라는 물건자체도 별로 필요없어질 것같다. 지금도 손때묻은 지전을 만지지 않고 다리품을 팔지 않아도 집에 앉아서 컴퓨터로 얼마든지 거래가 이루어지고소통을 하는게 가능하지 않은가. 어쩌면, 주민등록증이나 신분증대신 팔목에 바코드를 새겨넣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세상이 아무리 편리하다해도 카드나 숫자로 남는 인생보다는 윤흥길과 박완서의 소설처럼 땀내 밴 스무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나 머리칼몇을 묻어있는 여덟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이 되는 편이 훨씬 마음에 든다.자랑스런 이름이나 빛나는 인격의 흔적은 아닐지라도.
〈경북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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