延吉 기아훈련원장 피습 목격기

입력 1996-08-28 14:49:00

"괴한들 스치듯 찌르고 사라져"

지난 16일 오후 5시30분 연길시내의 기아훈련원 구내에서 괴한 2명에게 피습돼사망한 박병현원장의 사인은 무엇인가. 사건후 부검을 실시한 중국공안은 비공식통보를 전제로 사체에서 독극물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발표에는 적지않은 의문이 있다. 이에 당시 박원장과 함께 나오다 사건현장을목격한 본사 기자들의 목격기를 싣는다.

연길시 기아훈련원 박병현원장의 죽음은 우리에게 영화의 한장면처럼 다가왔다. 16일 그날은 모처럼 활짝개인 날이었다. 날씨는 무더웠다. 훈련원 원장실에서 만난 박원장은 러닝셔츠도 입지않은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두번의 만남이었지만 박원장은 우리를 오래사귄 후배처럼 대했고 우리도 그를 좋은 선배로 만났다. 백두산 취재여행을 다녀온 우리는 그와 천지의 신비함에대해 이야기를나누었다.

우리는 각자 처소로 가기위해 함께 차를 타러 훈련원 현관을 나왔다. 오후 5시30분쯤이었다. 아직 해는 지지않았다. 현관을 나설때 건물왼쪽 화단가에 두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서있는 모습을 볼수있었다. 직원이거니 여겼으며 박원장도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우리의 시선을 끌지못하는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박원장이 두사람의 옆을 지나는 순간이었다. 그중 한명이 박원장의 왼쪽옆구리를 손으로 툭쳤다. 장난치고는 좀 심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박원장에게 한 행동은 그것뿐이었다. 그들은 곧 양편으로 갈라져 건물옆으로 달아났다.박원장은 우선 자신의 바지뒷주머니를 살폈다. 우리도 소매치기인가 생각했다. 박원장은 곧바로 허리춤으로 손을 훑으면서 독침이다 고 고함쳤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

박원장은 와이셔츠를 걷어올리며 우리에게 찔린데가 있는지 봐달라 고 했다.우리는 작은 바늘자국을 확인했다. 박원장은 급한 목소리로 빨아달라 고 소리쳤다. 박원장의 바로 뒤편에 서있던 이진용기자는 본능적으로 박원장의 상처부위에 입을 댔다. 이기자가 한두번 침을 뱉었을때인가 박원장은 눈이 보이지않는다 고 외쳤다. 그리고는 서서히 쓰러졌다. 이기자가 응급구호할때 박원장은처음은 크다가 차츰 작아지는 경련을 일으켰으며 적지않은 침을 흘렸다.

우리는 직원들을 불러냈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순간 세상은 우리에겐적막이었다. 아무것도 들리지않는 고요 그 자체였다. 박원장을 병원으로 싣고가는 직원들에게 우리는 현장에 떨어져있던 흰색볼펜을 찾아내 병원으로 보냈다.사건이후 병원으로 옮기기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않았다. 우리도 다른 직원과함께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에서는 젊은 의사가 심장마사지를 하고있었다. 곧이어 책임자인듯한 의사가 나타났다. 그는 박원장의 전신을 한두번 만져보더니 응급실 바깥으로 나왔다. 어떠냐 고 묻자 그는 가망없다,이미 숨졌다 고 주저없이 대답했다. 우리는 아무 생각도 할수없었다. 응급실 접수데스크에는 문제의 볼펜이 놓여있었으며 볼펜에는 주사바늘이 들어있었다.

볼펜 주사바늘 확인

중국공안국에서 우리는 각각 떨어져 당시 상황을 수없이 되풀이 진술했다. 우리는 사건상황을 숨김없이 알려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범인 두명의 인상착의에대해 알려줄게 없었다. 고작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크지도 적지도 않은 체구의 남자 두명이었다 는 정도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남기지않았다. 조선족 중국공안은 범인 두명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를 이해해주었다. 범인의 인상은 특징이 없는게 특징이었다.

그러나 중국공안은 독침을 보았느냐,상처부위를 확인했느냐,무슨 독이 사람을그렇게 빨리 숨지게하느냐 는 대목에서는 용의자를 다루듯 거칠게 윽박질렀다.우리는 현장에서 바늘이 있는 볼펜과 박원장의 허리에서 바늘자국을 확인했다. 독극물이 사람을 그렇게 숨지게하는지 여부는 전문가나 의사에게 확인해보라 며 항의했다.

부검을 실시한 중국공안은 자세한 사인은 조직검사를 해보아야 안다는 점을 전제로 박원장의 사체에서 독극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고 비공식적으로 한국대사관에 통보해왔다. 현재 박원장의 죽음은 일단락된 상태다. 그러나 그의 사인에는 적지않은 의문이 있다. 우리일행은 전문가는 아니지만 독극물이 없다는 중국측의 통보를 그대로 믿을수 없다.

박원장의 죽음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박원장은 한국을 알리는 민간사절단이었다. 박원장은 처음 우리와 만났을때 이렇게 말했다. 훈련원에서 기술을 배운 조선족등 중국인들은 중국현지에 나와있는 한국 자동차회사에 취업이보장된다. 우리는 그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살아갈수있는 길을 열어준다. 그들은한국에 대한 고마움을 안은채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중국통보 믿을 수 없어

박원장이 무슨 원한을 사게 되었는지도 우리는 딱부러지게 알수없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는 결코 개인적인 원한을 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성문제 따위와는 아예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며 부정한 돈이나 회유를 거절한것으로연길사회에 평판이 나있었다. 그는 기아훈련원과 자동차수리공장 건물을 단기간에 많은 경비를 절감하며 지어 연길시에 첨단 공장을 선보였다.

그는 또 굶주림에 못이긴 탈북자들을 한국정부가 방치해서는 안된다며 안타까워했다. 탈북자들이 도움을 청해오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해군중령 출신의그는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였으며 남북이 혼재돼있는 연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회사와 부하직원들을 위해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걸고 일하다숨졌다. 삼가 고인의 명목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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