每日春秋

입력 1996-08-27 14:25:00

내가 아는 신세대 카피라이터가 있다. 그야말로 그는 카피로 세상을 보고 카피로 꿈을 꾸고 카피로 숨을 쉰다. 세상 모든 게 카피와 연결되지 않으면 해독되지 않을 정도다. 카피가 없으면 당장 죽을 수밖에 없을 게다. 그만큼 그는 자기일을 사랑한다. 처음에 나는 그의 열정에 감탄했고 존경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가까이서 살펴보니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말 그는 카피외엔 아는 게 없었다. 아예 관심도 없었다. 정치, 경제, 사회문제는 물론이고 사고를 요하는 문학이나 고급예술에는 유치할 정도였다. 언젠가 그로부터 들은 얘기. 그는 12.12나 5.18에 대해 전혀 관심없었다. 아예 광주문제와 관련된 얘기만 들으면 닭살 이 돋는다고 했다. 한번은 선보러 나갔다가 상대방이 정치얘기를 하는 바람에 토할 뻔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솔직하기도 하다.

이런 마니아들은 복잡한 것을 딱 싫어한다. 마니아란 게 원래 전문직이 변질된형태이다. 신세대들이 카리파이터, 프로그래머, 전문디자이너등을 지나치게 선호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나라가 후기산업사회로 깊숙이 들어서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복잡한 사회구조속에서 전문화된 일에 매달리다보니, 복잡한 생각,복잡한 가치체계, 무거운 주제등은 노골적으로 싫어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내숭 떨기도 싫어한다. 그것은 그들의 정서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재 때문일게다. 그러나 이렇게 극단적으로 편향화된 마인드에서는 창조적인 상상력이 쇠퇴하기 마련이다. 상상력이란 이 세상을 폭넓고 상호연관적으로바라볼 때 활발하게 일어난다. 한쪽 분야로만 기형적으로 비대해진 재능은 결국 기술자를 만들어내는데 그치고 만다.

다음 세기를 주도해나갈 자는 무엇보다 종합적인 사고력, 상상력을 강하게 지닌부류이다. 세계는 언제나 그런자들이 지배한다.

〈시인.대구대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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