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를 바꾼것은 5.18보다 12.12"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사건이었지만 법원은 법률적인 측면에서 피고인들이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할지만 판단했고 역사적 의미를 판단한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투명한 상태에서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2.12및 5.18사건과 비자금사건 담당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 金榮一부장판사는 26일 오후 5시께 공판이 끝난 직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역사적공판을 마친 소감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金부장판사와의 일문일답.
-선고공판을 연기할때 일부 피고인들에 대한 무죄가능성등 여러가지 추측이 많았는데.
▲정말로 힘든 재판이었다. 판결문의 주장과 판단을 보면 이 사건의 실체와 피고인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알수 있다. 갑자기 무죄를 선고한 것은 아니고내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아 작업 진척이 매우 느려져 공판을 연기한 것이다.-실형을 선고한 재벌회장들은 왜 법정구속에서 제외됐나.
▲원칙적으로 말하면 도망갈 우려가 없고 계속 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호용(鄭鎬溶).황영시(黃永時)피고인의 경우 내란목적살인혐의에 대해 무죄판단을 내려 5.18특별법 취지와 맞지 않고 광주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데.
▲특별법이 사실관계를 지배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피고인들의 죄를 엄중히가리는 것이 특별법의 정신이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일반 형사사건처럼 증거가있으면 유죄를 인정하고 증거가 없으면 무죄로 판단했다.
-盧泰愚피고인에게 징역 22년6월을 선고한 배경은.
▲盧피고인이 범한 죄중 상관살해미수죄가 법정형량이 가장 높다. 상관살해의경우 법정형이 사형뿐이지만 미수이기 때문에 감경해 유기징역을 선택했으며나머지죄에 대한 유기징역형과 경합시켜 가장 높은 형을 선고한 것이다.
-그래도 全斗煥피고인과 비교해보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집권과정에 비중을 뒀다. 全피고인은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지만 盧피고인은국민투표에 의해 직접 선출됐다.
-재벌총수중 4명에게 실형을 선고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액수가 많았고 이 기회에 엄중하게 처벌을 하자는 뜻이다.
-車圭憲피고인을 법정구속시킨 이유는.
▲피해는 5.18사건이 많았지만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은 12.12사건이다. 12.12사건에 가담한 피고인들에게는 무거운 형을 선고했고 車圭憲피고인을 법정구속한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변보호를 요청하게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는가.
▲대답하지 않겠다. 꼭 요청한 것도 아니었고...
-그동안 간담회를 통해 사실관계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는데 어떤 사실관계 규명이 가장 어려웠나.
▲12.12부분에 대한 사실관계 인정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으나 광주부분이 어려웠다.
-법정구속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기준이 있는가.
▲말하기 어려운데 12.12사건에 관여한 신군부 핵심인사들에 대해서는 적절한상태가 유지돼야 한다고 판단했고 당시 계급도 고려했다.
-사선변호인들은 재판부가 예단을 갖고 있고 충분한 변론시간을 주지 않는다는이유로 사임해 재판이 파행으로 치달았는데.
▲재판이 끝났기 때문에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재판과정중 아쉬웠던 점은.
▲좀더 좋은 모습으로 재판을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재판진행 책임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
-건강은 어떤가.
▲별로 좋지 않다. 매주 등산을 가는데 변론이 끝난 다음에는 한번도 가지 못했고 오늘 새벽1시까지 작업을 했다.
-선고형량을 결정한 시기는.
▲비자금사건은 이미 판결문까지 작성해 놓았고 12.12및 5.18사건은 선고공판 3일전에 결정했다.
-전직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한 심정은.
▲매우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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