每日시론

입력 1996-08-09 00:00:00

"종생부와 학생부"

교육개혁의 핵이었던 종합생활기록부(약칭 종생부)가 시행 반년만에 이름까지 갈리는 수모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개선안에 따르면 일선 현장의 업무부담을 종전 방식에 비해 경감한 것이눈에 띈다.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된 석차백분율 대신에 단순 석차를 기입하게 한 것과 또한 동점자를 허용하여 일부 학부모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돋보인다.

하지만, 6일 확정한 학교생활기록부(약칭 학생부) 안은 대학입학전형에서 고교간 학력격차를 인정하는 여부를 해당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논란의 소지를 여전히 안고 있다.특정 고교 전체학생의 성적수준이 일반 고교의 경우보다 월등히 높다고 인정되면 그 출신학교 학생에게 대학은 입학전형에서 가산점을 줄 수 있다고 하는데, 결국 우리나라 고등학교 전체가 서열이 매겨질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곧 고교간 학력격차 인정은 현행 고교평준화 정책의 완전한후퇴를 의미한다. 대입과정에서 명문고 와 비명문고 의 등급화는 추첨으로 고교배정을 받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명확한 기준도 없이 자율이라는 미명 아래 고교간등급화를 각 대학에 맡긴 점은 교육부가 책임 소재를 대학 측으로 떠넘기려는 속셈을 드러낸 것과 다름 아니다.

책임소재전가 속셈

돌이켜 보면, 종생부의 원래 취지는 교육적 측면에서 상당히 바람직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교육수요자 중심의 발상으로서,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재능및 인성을 살려내기 위해 다양한 학습과정을 전개하려는 뜻은 아주 좋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였다. 종생부에서 강조하려던 원칙은 학생들의 성취도를 등급화(grading)하지 않고 수행평가(performance evaluation)를 하려던 것이었다. 이 수행평가방식은 20명 내외의 학급정원에서 학생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 주제를 정한 다음 일정기간의 수행결과를 서술적으로 절대평가하는 것이므로, 다른 학생들과의 상대비교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성격이 짙다. 이런 업적수행평가는 학생개인의 소질개발과 향후 진학과정에서 전공분야를 정하는데 긍정적 효과를 기대케 한다.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교사 1인당 학생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잡무때문에 종생부의기재사항을 당연히 부담스럽게 인식하지 않을수 없다. 게다가 입시철의 치맛바람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더 말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최종학력이 되는 대학들을 서열화하는 현실에서고교생 개개인의 다양성은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서울대에 몇 명 입학하느냐에 따라 일선고교의 한해 농사가 가늠되는 마당에서 교육수요자의 입맛과 체질을 운위하는 것은 한마디로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자체를 바꿔야

이런 현실을 한꺼번에 고쳐보고자 시도하려던 것이 종생부 아니었던가. 아무튼 게임 자체를 바꾸지 않고 규칙만 몇가지 손질하려던 교육부의 노력은 허사로 판명났다. 이제라도 서울대를 포함한모든 국.공립대를 특성화하여 인문과학계열은 한국제1대학, 자연과학계열은 한국제2대학 하는 식으로 큰 틀 자체를 바꿀 생각을 해야한다. 참고로 같은 씨앗이라도 풍토가 다른 곳에 심으면 결실을 맺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해두고 싶다.

신뢰없는 자율 失效

사실, 우리처럼 좁은 나라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모든 대학들이 모든 분야에서 상호경쟁하는 것은결코 효율적이지 않다. 국.공립대학은 교육기회균등의 원칙을 고수한다는 의미에서 정부재원을 지원받는 반면에 사립대학들은 입학기부제를 도입하여 설립이념에 따라 특성화하면 어떨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해당 구성원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선별적 경쟁으로 발전을 유도해가야지,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신뢰없는 자율로써 추진하는 교육개혁은 실익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이름이 야릇하다 해서 종생부를 학생부로 바꾼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학생부가 종생부를 졸 하게 한 지금, 그래서 남은 것은 학생부군신위의 차례가 아닐까 염려스럽다.

〈경북대교수.사회학〉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