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5.18] 26차 공판 紙上 중계

입력 1996-08-02 00:00:00

"金광택씨 '출동때 부대원에 實彈지급"

◇金광택 20사단 61연대 2대대 6중대장 증인신문朴奉植검사가 검찰측 증인신문을 시작했다.

-朴검사=증인이 소속됐던 부대는 80년 5월 21일 오후 6시 광주와 목포간 도로를 봉쇄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죠.

▲金씨=그렇습니다.

-朴검사=임무를 부여받고 출동할 때 실탄을 수령해 부대원들에게 지급했습니까.▲金씨=그렇습니다.

-朴검사=5월 21일 밤 10시 10분께 효천역 부근에서 도로 차단임무를 수행하던중 목포쪽에서 차량 6대에 탑승한 시위대와 교전한 적이 있습니까.

▲金씨=있습니다.

-朴검사=5월 22일 새벽 1시께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던중 광주쪽에서 버스 5~6대를 타고 오는 시위대와 교전한 적이 있습니까.

▲金씨=예.

-朴검사=그 과정에서 여러사람이 총상으로 사망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金씨=2명만 직접 봤습니다.

-朴검사=5월 22일 오전 8시 30분께 효천역 부근에서 광주방면에서 오던 승용차1대에 총격을가해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을 사망케한 사실이 있습니까.

▲金씨=먼저 총을 뺏기때문에 총격을 가했습니다.

金榮一재판장이 증인신문을 펼쳤다.

-金재판장=광주로 내려가기전 자위권발동에 대한 명령을 받았습니까.

▲金씨=내려가기 전에는 받지 못했고 효천역 부근에서의 총격전 이후 들은 것 같습니다.-金재판장=5월21일 오후 10시께 효천역부근에서 시위대와 총격전이 발생했을때 시위대가 병사들을 향해 직접 총격을 가했습니까.

▲金씨=병사를 향해 직접 쐈고 여러사람이 함께 총격을 가한 것 같았습니다.

◇崔규진 前11공수여단 62대대 4지역대장 증인신문

-金相喜부장검사=5월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앞에서 11공수여단 병력이 장갑차와 버스를 타고돌진해 오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崔씨=알고 있습니다.

-金부장검사=5월24일 오후 2시께 증인의 부대가 주남마을에서 송정리비행장으로 철수하던중 효천역부근에 이르렀을 때 매복중이던 보병학교병력이 증인의 부대에 90미리 무반동총으로 사격을가했습니까.

▲崔씨=그렇습니다.

-金부장검사=당시 보병학교병력이 신분확인이나 사전경고를 했습니까.

▲崔씨=폭도로 오인해서 사전경고는 없었습니다.

변호인들의 증인신문이 이어졌다.

-徐翼源변호사=광주진압 작전 당시 실탄관리 책임을 누가 맡고 있었습니까.

▲崔씨=여단이 통합 보관하고 관리했습니다.

-徐변호사=진압작전중에 실탄 발포명령이나 자위권 보유천명에 대한 지시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崔씨=발포명령이나 자위권 발동에 관해선 한번도 지시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徐변호사=사병들에게 실탄을 분배한 시점은 언제입니까.

▲崔씨=구체적으론 기억이 나지 않으나 5월21일 경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판부의 신문도 계속됐다.

-金榮一부장판사=광주 투입전에 실시한 충정훈련에서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훈련이나 지시사항이 있었습니까.

▲崔씨=평소와 다른게 없었습니다.

-金부장판사=광주 투입전에 화염방사기나 대검 사용과 관련해 별도 훈련을 했다고 하는 얘기가있는데요.

▲崔씨=평소에 하는 훈련일뿐이고 광주작전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李상균 前20사단 62연대 2대대 5중대장 증인신문

-朴泰植검사=증인이 소속돼 있던 2대대는 80년 5월21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소재 광주통합병원 앞 돌고개로 출동해 시위대와 대치한 사실이 있지요.

▲李씨=그렇습니다.

-朴검사=다음날인 22일 오후 연대로 부터 광주통합병원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고 통합병원쪽으로 이동하던중 이를 저지하던 무장시위대와 민가지역에서 교전한 사실이 있나요. 또 당시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병력들은 응사를 하면서 통합병원으로 이동했나요.

▲李씨=교전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대장의 발포지시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상대편에서 발포함에 따라 병사들이 스스로 자위권을 위해 총을 쏜 것으로 생각합니다.

변호인측의 신문이 이어졌다.

-徐翼源변호사=5월22일 돌고개 작전 전후에 자위권 발동지시나 관련지침을 받은 사실이 있나요.▲李씨=총기 사용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절대 하지말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또 출동에 앞서 중대장과 병사들의 작전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徐변호사= 당시 총기를 일체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만 있었고 총기사용 허가는 22일 통합병원으로 이동할 당시 이후의 일이지요.

▲李씨=그렇습니다.

◇朴琮圭 前3공수여단 15대대장 증인신문

-李富榮검사=5월22일 새벽 0시40분경 3공수여단 병력은 광주교도소 앞에서 시위대와 교전을 벌였고 그과정에서 시위대의 徐종덕등이 총상으로 사망한 사실을 알고있습니까.▲朴피고인=알고 있습니다.

변호인측의 증인신문이 이어졌다.

-徐翼源변호사=광주에 있을 동안 鄭호용 특전사령관이나 상급부대로부터 자위권발동 지시를 받거나 계엄사령관의 자위권천명 방송을 본적이 있습니까.

▲朴피고인=지시를 받거나 방송을 본적은 없었고 광주교도소로 이동하고 난뒤 교도소에 뿌려진삐라를 보고 알았습니다.

이어 金재판장이 직접 증인신문을 펼쳤다.

-金재판장=상급자들에게 자위권발동을 건의했습니까.

▲朴피고인=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2.12사건의 피고인인 朴俊炳 前20사단장 증인신문

-李富榮검사= 5월 22일 광주 효천역앞에서 20사단 병력이 승용차에 총격을 가해 민간인 3명을사살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朴씨=알고 있습니다. 시신을 광주국군 병원에 즉시 인계했습니다.

-李검사=5월 26일 광주 재진입 지시는 최종적으로 누가 했습니까.

▲朴씨=전교사령관이 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판부도 신문에 참여했다.

-金榮一부장판사=광주 진압작전에 참여하라는 지시는 어떻게 받았습니까.

▲朴씨=전언통신문으로 처음 받았습니다.

-金부장판사=광주 진압작전중 발포를 부하에게 지시하거나 발포할수 있도록 상부에 건의한 적이 있습니까.

▲朴씨=전혀 없습니다.

張世東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 증인신문

-金秀淵=임헌표 전교사 교육훈련부장은 5월 23일 광주비행장으로 鄭鎬溶특전사령관을 영접나가헬기를 이용해 전교사로 돌아오는 길에 鄭사령관이 全斗煥보안사령관의 친필메모를 봤다고 진술했는데.

▲張씨=5월 23일에는 분명히 헬기를 이용해 사령관과 함께 전교사로 직접 내려갔습니다.-金변호사=증인은 전교사에 특전사 상황실을 운영한 적이 있습니까.

▲張씨=없습니다.

-李富榮검사=7공수여단장이 전교사에 머문 사실을 알고 있죠. 7공수 33대대와 35대대는 31사단에작전배속돼 여단장에게는 작전지휘권이 없는데도 7공수여단이 전교사에 상황실을 만든 사실은 틀림없죠.

▲張씨=상황실인지 여단장의 통신축선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상황판과 무전기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李熺性 12.12당시 중앙정보부장 서리 증인신문

-金相喜부장검사=12.12 직후인 13일 새벽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전화통화로 만나기로 약속한뒤 총리공관에 가 崔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있지요.

▲李씨=그렇습니다.

-金부장검사=새벽 2시30분경 보안사령관실에 가보니 전두환.노태우.유학성.차규헌.황영시 장군 등이 있었고 유장군이 난국을 타개할 만한 인물은 당신밖에 없으니육참총장을 맡아달라 는 요청을한 사실이 있지요.

▲李씨=그렇습니다.

-金榮一재판장=12.12 당시 사태의 구심점인 인물이 누구인줄 알았습니까. 또 그같은 사실을 알게된 것은 정확하게 언제부터입니까.

▲李씨=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 알았습니다. 알게 된 것은 12일 자정이 되기 전입니다.-金재판장=유학성 장군이 후임 총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는데 유장군이 구심이라는 생각은 않했나요.

▲李씨=안했습니다.

-金재판장=총장이 된뒤 수도권 부대 지휘관 등에 대해 단행된 군인사는 본인이 자체적으로 한것입니까.

▲李씨=그쪽의 요청이 있었고 인물과 경력으로 볼때 타당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것입니다. 증인신문이 끝난뒤 국선변호인인 閔仁植변호사가 崔世昌피고인의변호인 자격으로 朴琮圭피고인을 상대로 12.12사건 보충신문을 진행했다.

-閔변호사=12.12당시 崔世昌3공수여단장이 여단장실에 5개 대대장을 집합시켜 鄭병주 특전사령관에 대한 체포지시를 내렸습니까.

▲朴피고인=그렇습니다.

-閔변호사=체포과정에서 무력충돌을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朴피고인=충돌을 예상하고 간 건 아닙니다.

-閔변호사=특전사령관 집무실 문이 잠겨 있어 권총으로 문고리를 쏘고 들어갔는데 당시 방안에서 먼저 총알이 날아 왔습니까.

▲朴피고인=권총으로 문고리를 부수고 들어가려는데 먼저 안에서 총을 쏴 대응사격을 하고 들어갔습니다.

이어 검찰이 보충신문을 진행했다.

-宋讚燁검사=특전사령관을 체포하러 갈때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순순히 따라올 것으로 예상했습니까.

▲朴피고인=예. 우리가 당시 가진 정보로는 김오랑 부관만 총기를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무장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宋검사=체포하러 갈때 권총을 갖고 갖지요.

▲朴피고인=그렇습니다.

재판부도 보충신문을 벌였다.

-金榮一부장판사=집무실 문이 잠겨 있어 권총으로 문고리를 쏘았다고 했지만 문이 열려 있었다고 해도 어쨌든 권총을 소지한채 특전사령관을 체포했던 건 사실 이지요.

▲朴피고인=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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