每日春秋

입력 1996-06-24 14:21:00

얼마전 책장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옛 레코드 표지의 그림에 붙들려 한참동안을 나는 옛시간 속으로 풀려나갔다. 학창시절 푼푼이 모은 용돈을 들고 틈만 나면 가게에 들러 레코드를 고르던 내 마음은 얼마나 설레었던가. 집에 돌아와 그것을 턴테이블에 걸어놓고 흘러나오는 음악에취해 행복해하던 그때 레코드는 내게 무엇과도 비길 데 없이 소중한 보물이었다. 아니 나 뿐만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레코드는 그러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지금은 콤팩트 디스크에 밀려 생산조차 제대로 되고있지 않지만 음계를 조금씩 긁어 내리는 듯한 그 잡음속에서 나는 티없이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해갔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음악 감상실도 이제 사람들의기억 속에서 멀어져갔다. 사람들의 생활이 더 바빠졌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훌륭한 오디오와 원음보다 더 완벽하다는 콤팩트 디스크의 보편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내게 그 현상이 부정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피동적 행위가 아니라 창작하고 연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창조적행위이다. 그리고 음악은 순수한 소리로서 모든 이름붙은 것들을 구원한다. 구원이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음악은 틈이고 그 틈으로 일상의 막힌 것들이 새어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음악은 소음처럼 여기저기서 들려지는 음악이 아니라 듣는 음악, 팍팍한 생활 속에서 우리에게 생의 활기를 주는 음악을 말한다. 어쩌면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추억하고 미래를 추억하는 역동적인 일일 것이다.

오늘 저녁, 정다운 사람과 함께 은은한 차를 마시면서 탁탁 튀는 옛 레코드를 들어보는 여유를가지는 것은 어떨까.

〈피아니스트.계명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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