每日春秋

입력 1996-06-22 14:14:00

나는 사는데 약삭빠르지못하고 행동도 민첩하지 못하다. 그러니 자연 모른일이 굼뜨다. 군대도 늦게 간데다 동작이 느려 기합도 많이 받았다. 유학도 늦게 가서 오래 있었다. 대학교수도 50이 가까워 시작해서 아직 부교수다. 장가도 늦게 들었고,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이제 중1 짜리가 있다.이 녀석을 키우면서 학업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릴 때는 그저 열심히 노든 것만이 제할 일이라는 나의 주장을 집사람도 잘 받아들여 그 흔한 학원 한번 과외 한번 보내지 않았다. 물론 담임 선생님께도 소홀했다. 특히 6학년 때는 한번도 찾아 뵙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라 생각해 보지만, 통지표의 생활란에 좋지 못한 단어는 다 올려 놓았다. 이런 평어가 그대로 학적부에 올라갔다면 우리 아들 혼사길은 이미 막힌거나 다름 없다. 굳이촌지와 관련시키고 싶지는않지만, 대만 같은 나라에도 학교에 돈봉투는 없었다. 지구 위의 어느 나라에 이런 악습이 존재하는지 과문인지라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버스나 택시 회사의 노조는 임금 투쟁을 할 때 준법 운행을 한다. 평소에는 불법운행을 한다는말이다. 길바닥에 새겨 놓은 속도는 지키면 욕먹고 안 지키면 당한다. 밭에서 시장까지 옮기는 사이에 수십 배가 뛰는 배추값 속에도 대단한 도둑놈이 끼어 있을 것이다. 젖소는 잡기는 많이 잡는다는데 파는 사람은 없다 경광등에 사이젠을 울리며 총알택시처럼 달리는 구급차, 거북선의 총통을 손수 만드는 문화재 전문가, 한달 내내 놀고도 엄청난 액수의 세비나 타 먹는 국회의원.이런 괴이쩍은 사회에서 나 자신이나 초등학교 교사나 운천사나 경찰이나 배추 장사나 국회의원이나 다 촌지와 더불어 함께 어쩔 수 없이 살아 간다고 하지만, 또 신부나 스님들은 자식이 없어그래도 나을 테지만 존경하옵는 목사님들은 어떻게 살아가시는지?

〈경북대 부교수.중국어학〉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