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노사분규 모범적인 선례

입력 1996-06-22 14:48:00

"노사 서로 양보하는 미덕.합리적인 대화"

올해 노사분규가 뚜렷한 조기 진정국면을 보이고 있다.공공부문 노조의 연대파업 위기를 노사간의 합리적인 대화로 넘긴데 이어 만도기계,기아자동차,아시아자동차등 주요 제조업체의 노사교섭도 앞다투어 타결되고 있다.

아직 노사분규에 있어 태풍의 눈이라 할 수 있는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맹(現總聯)과 민주노총(위원장 權永吉) 소속 민주금속연맹 산하의 몇몇 노조들이 노동쟁의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전반적인 흐름를 바꿀 만큼 극단적인 대립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사실 서울시지하철등 공공부문 5개 노조가 연대파업을 경고하기 이전에는 올해노사분규가 예년에비해 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적이었다.

실제로 올들어 22일 현재까지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27건으로 노사관계가 매우 안정됐던 지난해동기의 31건보다 적고 쟁의발생 신고건수는 4백6건으로 지난해 4백1건을 약간 상회한 정도이다.그럼에도 이번 노사분규가 한때 지난 87년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이유는 불발로 끝난 공공 노조의 연대파업 움직임에서 찾아야 할것 같다.

과거 한국통신이나 서울시지하철의 부분 파행운행에서 경험했듯이 국민의 일상생활과 직결돼 있는 공공부문의 파업은 당장 엄청난 혼란과 불편을 가져온다.

더욱이 공공 노조의 연대파업이 막상 현실화됐다고 가정할 때 그 여파가 상상을 초월할 것임은쉽게 짐작되는 부분이다.

이번 노사분규를 지켜본 노동부의 고위관계자는 실제로 공공노조가 연대파업을 강행한 상황에서만도,기아등 주요 사업장이 가세했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을 것 이라면서 공공부문의 극적인 막판 타결이 극한상황으로 치닫던 물줄기를 되돌렸다고 봐야 한다 고 말했다.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처럼 숨가뿐 반전을 거듭한 이번 노사분규는 중요한 교훈과 함께 과제를 남겼다.

먼저 공공부문 교섭타결 과정에서 노사가 보여준 대화와 양보의 자세는 향후 노사관계에 이정표를 제시한 개가로 평가된다.

과거 공공부문의 노사분규는 명분과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데 반해 이번 사태는 노사가 서로 한걸음씩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비교적 합리적으로 해결됐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또 노조 활동에 있어 물리력을 앞세워서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교훈을 던져줬다.

공공부문 노조들이 이번에 사용자측과의 막판 교섭에서 극적인 합의를 본데는 해고자 복직요구의부분 수용외에 파업자제를 바라는 국민여론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陳稔 노동부장관이 이번 파업사태와 관련, 대립과 반목의 노사관계는 어느모로 보나 바람직하지않으며 우리 노사도 이제 국가경쟁력 제고와 선진적 노사관계확립을 위해 과거의 악습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할 때 라고 강조한 것은 바로 이같은 국민정서를 함축적으로 대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이번 노사분규는 노사간의 대립을 풀어감에 있어 勞-使-政 관계당사자 모두가 반드시따라야 할 확고부동한 원칙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공공부문의 해고자 복직 수용을 둘러싼 재계의 반발이 바로 그같은 원칙의 필요성을 입증해주고있다.

정부가 이번 해고자 복직 수용과 관련, 해고자 문제는 노사교섭 대상이 될 수없다는 그동안의 일관된 방침을 거듭 강조하고 있음에도 재계의 반발이 가라앉지 않는 것은 원칙보다 집단의 이익이우선되는 분위기가 아직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밖에 정부가 이번에 사태 해결에 급급한 나머지 주요 분규 사업장 노조들의 상위 단체인 민주노총에 지나치게 무게를 실어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물론 공공부문 노조들과 만도기계,기아자동차등 문제 노조들이 모두 민노총 산하였기는 하지만이번 분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국노총이 상당한 소외감을 느끼게 만든 것은 앞으로 노사관계개혁작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악재로 작용할것이라는 분석이다.

이같은 일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 노사분규가 이 정도 선에서 진정되고 있는것은 노사관계 개혁을 앞둔 시점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노사관계 개혁작업의 과정에서는 이번 분규가 던져준 교훈과 과제를 충실히반영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는 게 노동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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