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입력 1996-06-20 14:20:00

(…) 내 무르팍 밑으로 이름 모를 山草 파릇파릇한 이파리 보일락하고 황홀하구나 누가 이 흰무지개의 신비를 알리 나는 장삼과 걸방과 함께 쭈굴쭈굴한 내 몸뚱이를 잠깐 앉혀둔 채 눈덮힌산야를 한바퀴 휘둘러 보고 있다 …… 눈굴(窟) 1 ( 포항문학 16호)

눈 집어먹은 토끼 다르고 얼음 집어먹은 토끼 다르다 라는 우리네 속담이 있다. 어쨌거나 그 두토끼는 자동사 놀라다 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두 편의 눈굴 을 읽은 나는 어느쪽이냐 하면얼음 집어먹은 녀석의 형국일 터이다.

그 놀라움은 두 종류로부터 발생한다. 하나는 특이한 제재에서 오는 것, 다르게 말하면 전혀 낯익지 않은 대상을 만난 때문이다. 눈으로 덮인 굴 속에서 사승(師僧)을 좇아 행하는 승려의 참선,얼마나 희귀한 시의 장면인가. 또 하나는 시의 방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진정한 놀라움은 바로여기에 있다. 그 방법이란 일종의 역설일지 모르나 철저한 리얼리즘에 의한 로맨티시즘적 분위기로의 변형 수법이다.

사실주의에 입각한 창작과 낭만주의적인 독서의 행복한 결합. 그것은 또 어디에서 오는가. 여러가지가 보인다. 참선의 과정이 아닌 참선의 결과를 중시한 때문인데, 다음과 같은 신비하고 황홀한기술, 내 무르팍 밑으로 이름모를 山草 파릇파릇한 이파리 보일락하고 라는 부분과 이 연작 두번째 작품의 땅굴 속에 웅크린 등줄쥐 한 마리조차 지그시 감은 내 눈에 시방 또렷이 보인다등이 그 좋은 예이다. 참선의 과정조차도 눈굴을 파고 들어가 온기를 겨우 되찾는다 허기를달랬다 아니 허기는 본시 그가 느끼는 바 아니었다 에서 처럼 한기 대신 온기를, 허기 대신 허기에 대한 무감각으로 재빨리 바꿔놓기 때문이다. 황홀하구나 고요하구나 에서의 감탄어미 …구나 의 사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아픈 시를 로맨틱하게 읽고났을 때, 갑자기 서늘한 여름이 찾아왔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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