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무르팍 밑으로 이름 모를 山草 파릇파릇한 이파리 보일락하고 황홀하구나 누가 이 흰무지개의 신비를 알리 나는 장삼과 걸방과 함께 쭈굴쭈굴한 내 몸뚱이를 잠깐 앉혀둔 채 눈덮힌산야를 한바퀴 휘둘러 보고 있다 …… 눈굴(窟) 1 ( 포항문학 16호)
눈 집어먹은 토끼 다르고 얼음 집어먹은 토끼 다르다 라는 우리네 속담이 있다. 어쨌거나 그 두토끼는 자동사 놀라다 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두 편의 눈굴 을 읽은 나는 어느쪽이냐 하면얼음 집어먹은 녀석의 형국일 터이다.
그 놀라움은 두 종류로부터 발생한다. 하나는 특이한 제재에서 오는 것, 다르게 말하면 전혀 낯익지 않은 대상을 만난 때문이다. 눈으로 덮인 굴 속에서 사승(師僧)을 좇아 행하는 승려의 참선,얼마나 희귀한 시의 장면인가. 또 하나는 시의 방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진정한 놀라움은 바로여기에 있다. 그 방법이란 일종의 역설일지 모르나 철저한 리얼리즘에 의한 로맨티시즘적 분위기로의 변형 수법이다.
사실주의에 입각한 창작과 낭만주의적인 독서의 행복한 결합. 그것은 또 어디에서 오는가. 여러가지가 보인다. 참선의 과정이 아닌 참선의 결과를 중시한 때문인데, 다음과 같은 신비하고 황홀한기술, 내 무르팍 밑으로 이름모를 山草 파릇파릇한 이파리 보일락하고 라는 부분과 이 연작 두번째 작품의 땅굴 속에 웅크린 등줄쥐 한 마리조차 지그시 감은 내 눈에 시방 또렷이 보인다등이 그 좋은 예이다. 참선의 과정조차도 눈굴을 파고 들어가 온기를 겨우 되찾는다 허기를달랬다 아니 허기는 본시 그가 느끼는 바 아니었다 에서 처럼 한기 대신 온기를, 허기 대신 허기에 대한 무감각으로 재빨리 바꿔놓기 때문이다. 황홀하구나 고요하구나 에서의 감탄어미 …구나 의 사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아픈 시를 로맨틱하게 읽고났을 때, 갑자기 서늘한 여름이 찾아왔다.
〈문학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우원식 "최상목, 마은혁 즉시 임명하라…국회 권한 침해 이유 밝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