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입력 1996-06-12 14:50:00

총선이 끝난지 두 달, 법정개원일이 지난지는 일주일. 국회는 공전이다. 자연히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산적한 현안들을 다루고 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의 본업 은 말할 것도 없고 손님을 맞는등의 의례적인 업무조차 마비된 상태다.

현재 언뜻 떠오르는 현안들만 해도 의료마비 상황을 몰고올 수도 있는 한약분쟁,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對北韓 쌀지원문제,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국제수지적자, 경부고속철도 노선문제, PCS(개인휴대통신)사업자선정문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국회는 밤낮 입씨름만 한다. 평소같으면 온 나라가 시끄러울 초대형 사안들이지만 원구성이 돼 있지 않아 원천적으로 검토가 불가능하다.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권리와 당연한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당장 처리돼야 할 법안들도 낮잠만 자고 있다. 이번 179회 임시회에 정부가 제출예정인 법안은韓日간 초미의 관심사인 배타적경제수역(EEZ)법제정안을 포함해 19개다. 이 가운데 법제처가 반드시 이번 회기에 처리해야 할 것으로 분류한 법안은 모두 11개.

EEZ법의 경우, 정부는 日本 및 中國의 선포에 맞춰 대응한다는 전략을 세웠으나 우리 국회가 소모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일본은 이 법안이 중의원을 통과, 다음달 15일 시행예정에 있다.또 국민들의 호주머니 사정과 직결되거나 국가의 수입과 관련된 법안들도 있다. 재경원이 제출한소득세법은 처리가 늦어질 수록 소급분이 많아져 정부의 업무처리 가중의 부담이 생기게 된다.증권거래세법의 경우는 외국법인의 증권거래에 대한 세금부과가 목적인데 늦어질 수록 국가수입의 감소가 예상된다.

공익근무요원의 처우개선을 목적으로, 공익근무요원의 복무중 사고에 대해 국가유공자예우법에의한 보상을 보장토록 하는 병역법개정안도 처리가 지연돼 최근 京畿道의정부산불화재로 순직한요원들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의전업무 마비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외적인 망신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있는데 의장이없어 지난 6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장이 국립묘지를 참배 못하는 불상사도 있었다. 외국손님 맞이가 중단되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10일 빔 콕네덜란드총리의 국회방문은 예정돼 있다취소됐고 청와대 초청만찬에도 3부요인 가운데 국회의장 자리는 빌 수 밖에 없었다.앞으로 이어서 방한할 아일랜드의 트레시하원의장 과테말라의 리가스국회의장 등도 국회방문을요청하고 있지만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무처는 지금은 일정을 잡기가 곤란하므로 며칠만 기다려 달라 고 회신을 하고 있다.

더욱 웃지못할 사건은 지난 9일 국회환경단체 주최의 환경공로대전 행사 시상식에서 벌어졌다.국회의장상에 대한민국국회의장 이라고만 적힌 상장이 수여된 것. 의장이 선출되고 나면 그 때가서 의장의 이름을 적어 넣기로 했다.

〈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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