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개 기밀자료로 본 10.26서 5.18까지

입력 1996-06-08 14:43:00

"美, 관계악화 우려 공식표명 유보"

光州항쟁에 대한 무자비한 무력진압이 이뤄졌던 5월27일 그날 아침, 朴東鎭 당시 외무장관이 윌리엄 글라이스틴 美대사를 찾아왔다.

全斗煥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정권찬탈을 위해 이른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계획을 세우고, 국보위 설립 발표를 만4일 앞둔 이날 朴외무장관을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보내 美國의 의중을 미리 떠보도록 했던 것이다.

5월27일자 글라이스틴 대사의 전문은 이렇게 계속된다.

나는 외무장관에게 계엄령이 얼마동안 지속될 것인지, 국회는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새로운위원회가 헌법개정 논의의 場이 될 것인지 물어봤다. 그는 알지 못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 전문에서 국보위 설립이 한국국민들에게 사실상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명백한 증거로 받아들여질 것 이라고 지적하면서 12.12이후 일단의 군장교들이 韓國내 또는 韓美관계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무시하거나 낮게 평가하면서 차근차근 권력을 장악해왔다 고 불만을나타냈다.

그러나 그는 내 자신을 포함해 우리(美國)는 공식 대응을 결정하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깊이 생각할 것을 촉구한다 며 만일 즉시 공개적인 논평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면 사태진전을 주시하고 있다고만 말할 것을 제의한다 고 타전해 국보위에 대한 美정부의 입장 표명을 유보시켰다.

국보위 설립 통보에 대해 美국무부는 처음엔 가능하면 美國의 영향력을 이용해 이를 저지시켜볼궁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美國은 韓國의 민간정부 관계자들을 국보위에 반대하도록 고무할 경우 이를 계기로 全斗煥에 대한 반대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를 타진했던 것이다.홀브룩 국무부 東亞太담당 차관보는 5월28일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극비전문을 통해 이렇게 타전했다.

우리가 조금만 부추겨도 핵심적인 민간 내각 구성원이 이 기구(국보위)에 참여하거나 이름을빌려줄 것을 거부할 전망이 있는지, 이로써 군부 지배 체제에 대해 全장군의 권력장악의 합법성을 거부할 절차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대사의 판단을 알려달라 글라이스틴 대사는 같은 날 곧바로 이에대한 답전을 보내 불행하게도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쉽다 면서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는 현재의 내각이 군부 지배 정부에 기꺼이 봉사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글라이스틴 대사는 국보위에 대한 한국국민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 점칠 수 없었다.그는 최근 사태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 평가 라는 5월29일자 극비전문에서 全斗煥과 그 일당으로 하여금 사실상 정부를 완전히 통제토록 하는 최근 사태에 대해 한국국민들이 어떤 반응을보일 것인지는 우리에게 핵심적인 고려 사항이다 고 전제하고 만일 적절한 시험 끝에 대부분의한국인들이 새로운 체제 속에서 적당히 편안하게 살 의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 우리도 역시그럴 수 있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글라이스틴 대사의 혼란은 신군부에 대한 2중적 태도로 이어진다. 그는 신군부 세력에 대해 겉으로는 냉정하되 그들과 관계를 해치지 않는 어정쩡한 방식의 잠정태도 를 취하도록 美정부에건의했다. 이를 위해 글라이스틴 대사는 美정부가 韓國과 예정돼있는 모든 공식 관계를 유보시키되 全을 포함한 韓國관계당국과의 통상적인 실무관계까지 해치지는 않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이와관련 5월29일자의 또다른 전문에서 대사는 韓國정부에 대한 우리의 잠정 태도 에 대해 설명하면서 나는 떠오르는 한국 체제와 우리 사이의 관계 분위기를 결정하기 위해 적절한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며 적당한 태도는 냉정하지만 정중할 것 이라고 표현될 수 있을 것 이라고 제시했다.

이어 그는 (양국간의) 공식 관계에 일종의 유보를 채택할 것 을 제의하면서 그러나 이 유보가 全장군을 포함해 통상적인 실무 관계를 해치는 정도까지 가서는 안될 것 이라며 韓美연례안보회의, 정책조정회의를 비롯해 그해 8월로 예정됐던 韓美문화협력위원회 회의를 일단 연기시킬 것을 권했다.

국보위 신설은 5월31일에 발표됐다.

신군부가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중이었던 6월 중순, 홀브룩 차관보는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韓國을 방문할 의향을 내비쳤다. 6월 하순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회의참석 후 그달 말께 韓國을 방문하겠다는 것이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홀브룩 차관보의 방한에 반대했다. 그는 6월12일자 전문에서 반대 이유에 대해 당신은 全을 만나야 할 것이지만 그럴 경우 우리의 全에 대한 승인 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고 적어 자칫 홀브룩의 방한이 全斗煥에 대한 美國의 승인 이라는 인상을 주게 될 것을 우려했다.

이어 대사는 머스키 국무장관의 아세안 회의 참석을 기해 그가 장관에 의해서 콸라룸푸르나 日本요코타 美공군기지로 소환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당신의 방문으로 장관과의 대화를 위해 내가소환됐다는 정치적 이점이 흐려질 수도 있다 고 타전했다. 홀브룩 차관보가 韓國에 직접 오는 것보다는 글라이스틴 대사가 국무장관에 의해 소환돼 나가는 것이 신군부세력을 중심으로 한 韓國정부에 대해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이후 글라이스틴 대사는 6월 16일 홀브룩 차관보에게 다시 전문을 보내 앞으로 몇주일 안에 서울을 방문할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것같다 며 글라이스틴 대사가 콸라룸푸르로 가서 홀브룩차관보를 직접 만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이렇게 해서 홀브룩의 訪韓계획은 무산됐다. 그러나 美국무부는 글라이스틴 대사를 콸라룸푸르로불러 그곳에서 對韓國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사전 준비를 서둘렀다.

크리스토퍼 당시 美국무부차관은 6월21일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전문을 보내 全장군을 비롯해 朴외무장관을 포함한 韓國정부의 핵심 고위관리들에게 韓國정치지도자들의 투옥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전달할 기회를 최대한 빨리 마련할 것 을 지시했다.

이튿날 크리스토퍼 차관은 다시 전문을 띄웠다. 6월21일자 극비전문(문서번호 STATE163085)은 美國정부가 그동안의 이중적 태도를 벗어나 全斗煥세력을 사실상 승인키로 태도를 결정했음을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이 전문에서 크리스토퍼 차관은 글라이스틴 대사로 하여금 콸라룸푸르에 오기 전에 외무장관과全斗煥장군의 회동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 이라고 다시 지시했다.

크리스토퍼 차관은 이 회동에서 全斗煥과 朴외무장관에게 전달할 美國의 우려 에 대해 자세히설명했다. 그러나 이 美國의 우려 는 全斗煥의 정권장악을 사실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암묵적승인을 전달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전문에서 크리스토퍼 차관은 우리의 목적과 전략 이라는 항목을 통해 全斗煥장군과 그의 동료들이 韓國정부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으며 현재 취해지고 있는 조치 덕분에 육군도 단합됐다고 결론지었다 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美國은 全斗煥세력의 정통성을 문제삼기 보다는 全斗煥중심 체제의 과격한 행태를 완화시키고 정치에 대한 군의 개입을 최소화시키며 경제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것 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크리스토퍼 차관은 글라이스틴 대사와 全斗煥과의 회동에서 全에게 전달할 내용을 별도로조목 조목 열거했다. 그 첫번째 항목은 바로 全斗煥에 대한 암묵적 승인을 전달하라 는 것이었다. 관련 전문은 이렇게 적혀있다.

全과의 회동의 특별한 목적은 그에게 우리의 암묵적 승인을 전달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와함께우리가 그를 다룰 실질적인 문제로서 그의 행위에 따라 (韓美)관계의 성격이 결정될 것임을 이해시켜야 한다. 또한 우리는 앞으로 몇 개월 동안 우리 자신의 행동의 자유의 일부를 유보할 의사가 있다는 점도 전달해야 할 것이다

〈워싱턴.孔薰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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