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유치국가 결정을 4일 앞두고 싸우기만 하던 정치권이 뒤늦게 월드컵 지원 생색내기에 나섰다. 온 국민들의 여망에도 정치권만 팔짱을 끼고있다는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때문일까.
신한국당은 李洪九대표체제 출범후 첫 고위당정회의 도중 축구경기 관람을 이유로 회의는 뒷전으로 내팽개친 채 잠실운동장으로 달려갔다. 회의시간은 불과두 시간도 채 안되었다. 실질적인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당정회의 중단사태는 월드컵유치 지원에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는 국민된 도리를 표시한 것일 수도 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민생과 국정이 갑작스런축구열기로 실종되는 순간이었다.
金泳三대통령도 이날 국정에 바쁜 가운데도 孫命順여사와 잠실벌을 찾아 시축 까지 했다. 그리고 6만여 관중들과 함께 환호했다. 결국 이날 축구경기는 여권의 당정 고위인사들이 모두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근래 보기드문 성황 을 이루었다. 그러나 솔직히 이들의 대거관람은 대통령의 참석으로 상황이 변해 간것으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
국민회의 金大中총재도 월드컵유치활동을 외면만 할 수 없었던지 이날 국민회의총재 명의로 79명의 국회의원과 2백만 당원을 대표하여 세계축구연맹(FIFA)집행위원들 앞으로 서한을 보냈다. 金총재는 월드컵 유치가 남북관계개선과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 이라며 유치활동이 우리 국민 모두의 염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金총재는 또 아태재단 공동의장인 오스카 아리아스 전코스타리카대통령 앞으로도 긴급 전문을 보내 자국 소속 집행위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호소했다.
金총재의 이날 행동도 곧이 곧대로 비치지 않았다. 선의(善意)라기 보다는 시도 때도 없이 장외집회나 하고 대여투쟁만 하고 있다 는 비판을 의식한 부담감떨치기로 밖에 비쳐지지 않았다. 自意가 아닌 他意였다는 소리다.
아무리 봐도 이날 정치권에서 보인 행태는 월드컵을 유치할 경우 우리도 노력했다 며 잔칫상에 자신들의 수저 한 벌을 더 얹어놓자는 무임승차 를 위한 것이었거나, 유치에 실패할 경우 정치권은 밤낮 싸우기만 하고 뭣 하나 했느냐는 국민적 비난을 피하기 위한 사전대비책 정도로 비춰져 씁쓰레 했다.
진정 정치권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해야할 일은 유치하면 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유치 결정 이후의 일을 걱정할 때다.
〈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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