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공판서 새로 밝혀진 사실

입력 1996-05-07 14:13:00

"全씨,崔대통령 광주방문 건의"

80년 5월17일부터 5월27일 사이 광주진압 부분에 대한 검찰 직접신문이 진행된 12.12및 5.18사건7차 공판에서는 당시 보안사 요원들의 광주 파견등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다.▲崔圭夏씨의 광주현지 방문 건의

全斗煥 보안사령관이 지난80년 5월 22일 崔圭夏 대통령을 찾아가 광주 시위사태를 조기 수습할수있도록 崔대통령이 직접 광주를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全씨는 崔대통령에 대한 건의에서 본인이 고급장교 61명을 광주 현지로 파견해 계엄업무를 보조케 하겠다 고 밝혔다.

崔대통령은 사흘뒤인 25일 오후 5시 30분께 광주에 도착,시위자제를 호소하는 담화문을 발표한뒤저녁 늦게 이희성 계엄사령관등과 함께 귀경했다.

▲광주 계엄군에 하사금 제공

80년 5월 19일 정래혁,문형태씨등 광주 출신 유력인사 8명이 시위 선무활동을 위해 광주를 방문했다.

이들의 방문은 全斗煥 보안사령관의 요청으로 이뤄졌으며 全씨는 당일 정석환중앙정보부 전남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래혁씨등 8명에게 1인당 50만원씩 4백만원의 활동비를 지급토록 지시했다.

全씨는 또 5월 22일 정석환 전남지부장을 통해 최웅 11공수여단장에게 1백만원의 격려금을 하사토록 했다.

全씨는 당일 오전9시께 정 지부장에게 특전사 최웅여단장의 소재가 파악되지않으니 전조직을 동원해 최장군의 소재를 파악해 보고하라 고 지시한뒤 소재가 파악되는대로 격려금을 지불하라고지시했다.

▲보안사 요원의 광주 파견 결정

全씨는 5월 19일 최예섭 보안사 기획조정실장, 홍성률 1군단 보안부대장, 최경조 보안사 대령, 박정희 중앙정보부 과장등을 광주로 파견했다.

全씨는 당시 18일 상황에 대해 19일 아침 참모회의에서 崔 기조실장에게 주의를 주고 광주상황을즉시 보고토록 지시했고 광주의 505보안부대에 지원할 것이 있으면 지원하라고 지시했다.崔실장은 당시 광주의 보고가 잘 안되니 직접 내려가 파악해 보고하겠다고 자원했고 광주의 상황이 서울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505부대원 10명중 행정병과 환자들을 빼면 실제 요원이 적다고 보고해 수사요원들, 전문가들을 저녁에 보내도록 조치했다.

▲美항공모함도착시까지 도청진압작전 일시 연기

李熺性 계엄사령관은 2군사령부 김준봉 작전처장으로부터 5월 22일 오후 3시께 광주 재진입 작전실시를 건의받았으나 한미간 협의사항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24일까지 대기토록 했다.李씨는 광주 재진입을 위한 특공작전을 실시하되 북괴남침에 대비한 미항공모함의 도착시간및 현지 지휘관의 가용시간등을 중점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25일이후에 특공진압작전을 전개토록 지시했다.

李씨는 5월 23일 오전 6시께 육참총장 접견실에서 일반 참모부장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이같이 결정했다.

▲蘇俊烈씨에게 친필 서신

全斗煥 보안사령관은 5월 23일 鄭鎬溶특전사령관을 통해 蘇俊烈전교사령관에게 광주시위 진압을독려하는 친필 메모를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메모에는 소선배 귀하,공수부대를 너무 기죽이지 마십시오. 희생이 따르더라도 광주사태를 조기에 수습해 주십시오 라고 기재돼 있었다.

임헌표 전교사 교육훈련부장은 광주비행장에서 전교사까지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함께 헬기를 타고 가는 동안 鄭鎬溶 특전사령관이 전씨의 친필메모를 주머니에서 꺼내 읽는 장면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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