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정치력의 검은 이미지

입력 1996-03-29 14:33:00

대통령의 살림살이를 관장해온 측근 한사람이 거액의 수뢰사건으로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건만 이 사건이 또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대통령 취임을 전후하여 그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크게는 수억원에 이르는 뭉칫돈을 서민들이 간고등어 사들고 들어오듯매일 집으로 가져왔다는 사실에 있다.

權力 과 뇌물관행

재벌들로부터 수천억원의 돈을 거둬들인 죄로 전직 두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구호 아래법의 심판을 받는 이즈음, 이번에는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 한사람이 마치 일수꾼이 일수금이라도수금하듯 각 기업체로부터 수십억의 돈을 열심히 거둬들인 이 현실에 우리 가난한 백성들은 기가막혀 노여워할 기력마저 없다.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권력 주변에는 그 권력의 크기에 따라 뇌물성의 부정한 돈들이 관행으로거래되어왔고, 그것은 이제 권력주위에는 으레 있는 일로 당연히 인식되어서 국민들은 그러한 부정을 암묵적으로 용서하는 도덕적 불감증에 중증으로 감염되어 있다. 오히려 높은 권좌에 있으면서 한탕 챙기지 못한 사람을 우리 사회는 융통성 없는 무능한 인물로 경멸하는 풍조에 물들어 있는 것이다.

여기 두명의 국회의원 후보자가 있다. 한 후보는 호방하고 활달한 성격에 타협과 요령으로 매사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인물이고, 또 다른 후보는 성실하고 정직한 반면 타협과 요령을 몰라 매사에 융통성과 추진력이 부족한 인물이다. 우리는 이제 이 두인물중 어느쪽이 과연 우리 정치에 적합한 인물인가를 가름해야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수완.요령과 능력

얼마전 까지도 우리는 가난을 벗어나 선진국으로 진입하기위해 능력만 있으면 웬만한 도덕적 결함쯤은 대충 눈감아주는 관대한 풍속속에 살아왔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보다는 요령있고 수완좋은 사람을 이른바 통 큰 사람으로 높은 점수를 주어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호해온 그 능력있는 사람들은 과연 이 사회에 어떤 식으로 그들의 능력을 활용해 왔는가. 그들의 능숙한 타협은 부정과 불법과의 타협이기가 십상이고 그들의 수완과 요령은 탈법과 비리에 동원되기가 일쑤였고 그들의 정치적 역량은 얼마만한 돈을 재벌로부터 끌어모을수 있는가에 좌우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연일 터져나오는 부정과 비리 수뢰사건을 바라보며 우리는 이제 그들의 수완과 능력이 더이상 우리 사회에 기여하지 않음을 알았고, 오히려 우리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속임수와 허구임을깨달았다. 정직과 성실을 무능으로 인식한 지난날의 잘못된 평가에 우리가 지금 지불하는 대가는우리의 양심에 가해진 도덕적인 치명상이다. 터졌다하면 수십억 규모인 권력형 부정부패에 우리국민이 지금 요구하는 것은 엄중한 처벌이 아니다.

그러한 권력형 부정이 어느 한 정권이나 어느 한 부서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온나라 구석구석에일종의 관행과 풍속으로 정착되어 있다는 사실에 우리 국민은 한마음으로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비관적인 인식은 우리 모두가 공범자가 되어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 정직과성실을 경멸하고 실적과 성과만으로 사람의 능력을 가늠해온 지난날의 우리 가치 기준이 선진국문턱에 들어선 지금의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것은 전도된 도덕적 가치의 뒤늦은 역습때문이다. 새판짜기 기회돼야

이제 우리는 뒤로 밀쳐둔 성실과 정직을 인간 덕목의 제일 높은 자리에 되찾아 놓아야할뿐 아니라 술수와 요령으로 재화를 늘리는 능력있는 사람보다 부정부패를 거부하고 뇌물성 검은 돈을 단호히 거절하여 국가와 공공의 재산을 성실히 지키는 정직한 인물이 더 필요한 시대임을 알아야한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이번 총선은 그래서 우리에게는 더욱 뜻있는 선거가 될 것이다. 정직하고 깨끗한 인물에 목말라있는 우리 정치판을 이번에야말로 우리국민의 손으로 새로 짤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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