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가 기가 막힌다던데...

입력 1996-03-28 00:00:00

광고(廣告)는 자본주의 사회의 꽃 이라고 불린다.

헝겊에 써 붙인 16세기형 천막광고 시대와는 달리 21세기 인터넷 광고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일상속에서 광고로부터 해방된 생활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에서 보아야하는 광고만 2백가지가 넘고 TV에서 만나는 CF는 평균 7백편이 넘는다.

얼마전 TV에서 팬티선전에 나온 어느 근육질 좋은 남자 탤런트가 엘리베이터 인지 아파트문인지 애매한 문앞에서 한 여인이 거절 의 표정을 지은채 문을 닫으며 사라져들어가자 손바닥으로 문짝을 탁! 치는 광고가 나간적이 있었다. 그팬티 제조회사는 그광고로 높은 시장 점유율을 지키면서 때돈을 벌었다는 것 이 광고계의 정설로 돼있다. 바로 그때 이런 개그가 뒤따라 나왔다. 그 탤런트 가 엘리베이터앞에서 팬티를 입고 여인에게 문을 열라고 했다. 그러나 여인은 냉정하게 문을 닫았고 남자 탤런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문짝을 두드렸다. 여 기까지는 원래의 CF와 내용이 같았다. 그러나 문짝을 고통스런 표정으로 두드 린 이유 가 달랐다. 사실은 엘리베이터 문짝이 닫힐때 남자 탤런트의 심벌 이 문틈에 끼는 바람에 찌그러진 표정으로 문짝을 두들겼다는 거다. 엘리베이 터문은 원래 웬만큼 굵은 물체가 끼게되면 일단 다시 열리게 돼있다. 그런데도 무언가 끼였는데도 계속 닫겨버린것은 그 탤런트의 심벌 이 너무 작은고추 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개그가 던지고자 했던 암시적 메시지 였다.

요즘 총선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쏟아져나오고 있는 정치광고 속에서 바로 그팬 티광고의 역설적인 개그와 같은 역이미지 만들기 싸움이 숨겨져있음을 보게된 다.

멸치광고 !

우리보다 최소한 30여년 앞서 정치광고가 시작된 일본만 하더라도 산동물도 아 닌 죽은 멸치가 국회의원 선거의 광고 모델로 등장한 예는 없었다. 더구나 두 야당이 똑같이 멸치를 광고 주제로 삼고 있음은 다분히 광고속에 숨어있는 또 하나의 감춰진 광고효과를 은유법으로 노려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일단 한국에서 멸치!하면 거의 대다수 주민들은 거제도 대통령 집안의 멸치어 장과 연상된 이미지를 떠올리는게 사실이다.

수입을 못하게 해서 멸치값이 오르고 대통령댁 가업이 덕을 본다 는 식의 무 리한 불신이 루머와 함께 떠돌고 있었던 것이 야당으로 하여금 멸치광고를 선 택하게 한 기본토양이랄 수 있다.

실제 지금 한국의 멸치값은 턱없이 비싸게 돼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3백90개 수산품목중 멸치등 48종은 수입제한품목으로 묶어놓고 있다. 아무나 외국멸치 를 수입하려면 97년 7월1일이 돼야한다. 그렇다고 외국산 멸치가 전혀 수입되 지 않느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수산청이 지정한 단체와 외국합작어업자는 추천 을 받아 수입할 수도 있다.

작년 12월 정부가 농산물 유통공사에게 수입허가를 내줘서 말레이지아산 멸치 2백톤을 수입케 됐고 멸치광고가 나간 3월에 1백톤을 추가 수입케 했다. 수입허가이유는 국내 멸치값 가격 조절용이었다. 우선 겉보기에는 수입을 했 으니까 대통령 눈치봐서 수입금지 시키고 그래서 멸치값이 올랐다 는 루머와 불신에 대한 반론거리를 만든셈이다.

그렇지만 한국 국내 멸치 연간 어획고는 94년 약 1만9천톤, 95년 2만3천6백톤으 로 3백톤쯤 수입해봤자 언발에 오줌누기다. 그나마 맛도 없고 인기가 없어서 2 백톤만 공매되고 1백톤은 남아있다. 공매된 2백톤도 낙찰받은 도배상들이 대부 분 창고에 쌓아놓고 있다. 그러니 멸치값이 조절되기는 커녕 쇠고기 보다 2배 더 비쌀 수 밖에 없다.

야당에게 멸치를 신문광고에 끌어넣을 빌미를 줄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마리의 멸치를 놓고 3김 이라고 빗댓지만 콩세쪽이나 고등어 세마리 얹어놓고도 3김 이라고 할 수 있고 멸치말고도 쇠고기 보다 비싼 품목이 있을 텐데도 굳이 멸 치를 택한건 그들의 광고배경 설명대로 멸치를 대입시키므로서 무언가 연상될 수 있지 않겠느냐 는 광고속에 담겨진 또 하나의 이미지 뒤집기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난데없는 멸치광고에서 다함께 익살스런 재미보다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왜 집권층과 국민들사이에 멸치하나에까지 불신의 정서가 끼어 있어야 하며 야당은 그런 부정적 정서를 정치광고로까지 이용해야하느냐는 점이다. 수 입제한은 어민전체를 위한것이라는 긍정적인 이해도 필요한데도 말이다. 멸치 값을 올려둔 신한국당과 현정부를 옹호해줄 생각은 멸치눈알만큼도 없다. 단지 국민소득 1만불 21세기 민주국가 정치광고에 멸치가 등장해야하는 우리의 정치 현실이 기가막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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