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자랑과 자부심

입력 1996-03-27 14:44:00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부모들은 자랑스런 아이를 만들려고 몹시 애를 쓴다. 그러기 위해 아이는 부모의 온갖 구박을 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밖으로 일등을 하고 경쟁에 이기도록 강요당하는 동안 안으로 분노와 원망이쌓인다. 자율과 자부심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억압된 적개심은 수동공격적인 반응으로밖에 나타날 수 없어서 눈치보며 꾸물대고 호통과 벼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요령을 피울 수밖에 없게 된다. 강요와 수동공격적 반응 사이의 악순환이거듭되는 동안 상황은 초등학교 일이학년 아동을 밤 12시 넘어까지 꼼짝 못하고 책상에 붙어있게 몰아대는 아동학대에까지 이른다.

그렇게 소극적 반항 조차도 못하는 아이는 내면화하여 스스로 일등해야만 하고이등만 해도 세상이 무너져 내리듯 후들거림을 느끼다가 사춘기 거치며 머리가굵어지면 내가 무엇 때문에 누굴 위해 공부해야 하나 하는 회의와 복수심에서헤어나지 못해 그때 까지의 우등생이 갑자기 시험에 실패하고 엇나가기도 한다. 그래도 안되면 병이 난다.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자신을 자랑스럽게 느끼고 자부심을 갖게 해야한다. 부모의 욕심이 아니라 아이 속에서 자라나는 의욕이 앞서가게 해야한다. 경쟁력을 갖게 길러냄으로써 현실에서 이기고 성취감을 맛보게 하면 자부심이 생기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은 잠시 잠시의 임시적 수단에 그쳐야 한다. 그것이 일상적 패턴이 되어서는 안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지배당하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 받는 것이 인생에 다가오는 모든 상황들을 주인으로서 맞닥뜨릴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한다는 점이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빨리 자라라고 목을 뽑아 올리면 벼는 시들어 버린다.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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