每日 시론- 제자리 지키기

입력 1996-02-02 14:19:00

전직 총리를 지낸 신망있는 현직 변호사가 그동안 여러 정당에서 영입설이 파다하더니 며칠전 떠들썩한 화제 끝에 모 정당에 입당했다. 총선을 두어달 앞둔미묘한 시기여서 그 변호사의 정계입문은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청렴결백하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 강직한 인물로 알려져서, 기성정치에 실망한 국민들은 그분의 정치 입문에 더욱 기대와 관심이 컸는지 모른다. 本業 과 정치入門

그러나 여기서 잠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각계의 저명 인사들이 그들의 본업이나 전문직을 버리고 정치에 입문하는 광경을 지켜보아왔다. 학문 높은 대학교수가, 말 잘하는 변호사가, 인기있는 탤런트가, 글 잘 쓰는 신문기자가, 돈 많은 재벌이, 병 잘 보는 의사가, 그리고 소설가 뉴스앵커맨 명사회자 같은 사람들이, 그들의 전문분야에서 이름깨나 날리고 얼굴깨나 팔렸다하면 마치 내 인생의 최종 목표는 정치에 있었다는듯 저마다 현직을 버리고 정치판에 뛰어든 것이다.

왜들 이러는 것일까? 왜 이나라 각 분야의 저명 인사들은 그들 인생의 최종 목표를 정치 입문에 두고 있는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지금껏 내가 만나본우리나라의 저명 인사들은 대부분 우리 정치판에 환멸과 냉소와 노골적인 경멸을 보내곤 했다. 반세기 가까운 우리 현대 정치사가 온통 부정부패와 비리 탈법으로 얼룩진 형편이라 심한 경우는 우리 정치계를 협잡배들의 협잡 무대로비유하는 인사까지 있을 정도다.

경멸과 선망 교차

그런데 정치계를 협잡판으로 매도하던 바로 그 인사들이 세상에 이름깨나 알려지고 얼굴깨나 팔렸다하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그 추악한 정치판에 내가 언제 그랬냐는듯 앞다투어 뛰어들고 있다. 지금까지의 그들의 본업은 그렇다면정치 입문을 위한 임시 방편이거나 편법이었단 말인가? 그들의 명성을 높여주고 얼굴을 세워준 본업쪽의 여러 고객과 종사자들은 그렇다면 그들의 정치 열망에 들러리나 보조 역할을 해왔다는 이야긴가? 왜 그들은 수십년간 공들여온자신의 필생의 본업을 하루 아침에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그토록 환한 얼굴로저 험악한(?) 정치판에 훨훨 날아 도망치는가?

이 기묘한 한국판 엑소더스를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거나 용서할수 없다. 그들은 혼자 힘으로 지금의 명성과 지위에 오른 것이 아니다. 오늘의 그들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원과 신뢰와 협조가 필요했다. 이제 그 많은사람들의 도움으로 일가를 이루어 제대로 일할 연륜에 이르자, 그들은 마치 내본래의 목표는 딴곳에 있었음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기꺼이 본직을 내던지고 엉뚱한 정치판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정치에의 환멸과 선호가 기묘하게 혼재된 이 한국식 의식구조는 그러나 정치지망생 당사자들보다 우리 국민에게 더 큰 도덕적인 위험을 제공한다. 그들의 변신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그들의 변신을 통해 정치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착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위험한 착각은 정치가 모든것을 해결한다는 탈 도덕적인 그릇된 사고를 조장한다. 아니 이미 그러한 사고에 젖어있는 우리 국민들은 지난 세월 3명의 육군 소장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별다른 저항없이 묵묵히 지켜보지 않았는가.

價値觀혼란 큰 우려

변호사는 변론할때 위대하고, 교수는 강의할때 존경스럽고, 탤런트는 연기할때가장 아름답다. 우리는 더 이상 대학 총장이 국무총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고,덕망있는 변호사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보고싶지 않다. 우리는 그들이 정치가가 되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수십년 지켜온 본업을 버리는 것이대단히 못마땅하다. 제자리를 지키는 수많은 건전한 전문인과 직업인들에게 그들의 정치 입문은 일종의 배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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