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선택하는 仁者어떤 이들은 자연을 싫어한다. 실존철학자 사르트르가 그 전형적 예이다. 그러나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論語 에 仁者樂山 智者樂水, 즉 착한 이는 산을 좋아하고 슬기로운 이는 바다를 좋아한다 라는 孔子의 말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인자도, 지자도 되고 싶었다. 착한 바보도 싫었고, 똑똑한 깍쟁이도 싫었다. 그러나 양자 택일의 선택이 필요하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산을 택한다. 바다가 시원하고 행동적이라면 산은 포근하고 명상적이다. 바다보다 산이 더 자연스럽다.산은 아름답다. 산이 나의 미학적 욕망을 충족시켜준다는 말이다. 그 만족은 생리학적이 아니라정신적이고, 실질적이 아니라 상징적으로만 존재한다. 陶淵明의 시 귀거래사 , 베토벤의 교향곡운명 ,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 등의 예술작품들로써 우리 모두의 성적, 영향학적, 주거적, 경제적, 정치적, 지적등과 같은 욕망이 실제로 만족될 수 없다. 예술작품들은 여성도, 빵도, 옷이나집도, 돈도, 과학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어떤 욕망을 만족시켜준다면 그런 만족은 상징적 만족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은 모든 예술작품, 그리고 예술적 감상대상들의 존재 양식이 물리적이 아니라 언어적 즉 의미 적임을 드러낸다.
해방과 희망의 상징
산은 언제나 푸르다. 겨울에도 그렇다. 푸른색은 생명력을 상징의미한다. 산은 생명에 대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을 상징적으로 만족시킨다. 대기오염으로 숨이 답답하고, 비좁은 공간, 삭막한 대도시에 사는 이들에게 산은 맑은 공기와 넓고 풍요한 삶의 공간을 상징한다. 산은 언제나높다. 높음은 발전, 정복, 지배, 권력, 해방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욕망의 상징이며, 높은 산은 이러한 종류의 인간적 욕망을 상징적으로 채워준다.눈앞에 우뚝 선 푸른 산은 저급한 곳에서 고급한 곳으로 올라오라는 유혹이며 도전이다. 어려움을 참고 그곳에 올랐을때 육체적 정복감과 정신적 승리감을 함께 체험한다. 높은 산정에 올라간 등산객들이 갑자기 왜소해진 눈아래 산야와 하천, 마을과 도시들을 한꺼번에 내려다보며 촌스럽고 유치하게 두팔을 높이들고 환호소리를 지르는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또한 산은 해방과 희망을 상징한다. 끝없이 전개되는 시야, 한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넓은 세계와 접하면서 우리는 한없는 해방감과 자유에 대한 상징적 체험을 한다.
산의 아름다움, 마음을 끄는 힘은 산의 물리적 모습과 등산의 위와 같은 상징적 의미와 가치에국한하지 않는다. 수없는 큰 파도를 상상케하는 산맥들의 운율적 구조, 산과 산맥 사이로 흐르는하천의 우아한 선들, 마을과 도시를 서로 잇는 좁고 넓은 길이 그어 놓은 선들은 예술작품에서찾아볼 수 있는 질서미를 자연속에서 입증한다.
自然과 調和도모를
산은 혼자서도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과 더불어 존재할 때 산의 미는 더욱 확연해진다. 흰 벽에싸이고 빨간 지붕이 덮인 한두 채의 집이 들어선 산골짝의 경치는 인간 그림자도 볼 수 없는 경치에 비해 한결 더 아름답다. 아무리 아름다운 산맥으로 겹쳐진 지방이라도 군데군데 마을들이나작은 도시가 전혀 들어서 있지 않다면, 그 산맥의 자연미는 그만큼 덜 아름답다. 자연이 죽은, 인간만의 세계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면, 인간 부재의 자연도 그것만으로는 완전한 미를 갖추지못한다. 자연미의 궁극적 의미는 자연과 인간의 원초적 조화로운 질서 의식이며 경험이다. 그런데언제부터인가 현대문명으로 자연과 인간의 불균형 관계가 날로 더 심해지는 것을 보는 마음 한없이 안타깝다.
〈포항공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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