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만날 장소와 날짜를 얘기하고 공지사항을 얘기할 때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홍선배에겐 시선을 나누지 않았다. 그러한 무시와 홀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혀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무안당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빨간 가죽지갑 속에서 가늘고 긴 담배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켜는 그녀의 흡연행태가 날씨가 맑았던 날은 우아해 보였지만 창밖으로 비가내리는 날엔 너무나 퇴폐적으로 보였다.
80년 5.18이 일어난 직후였다. 사직 당국의 체포대상으로 지목되어 쫓기고 있는 학생이 서클에서생겨났다. 그가 바로 서클을 이끌고 나가는 사람중의 하나였던 오태석이었다. 쫓고 쫓기는 일이계속 되었으나 더이상 숨어다닐 수도 없고 은신처도 마땅치 않았던 그는 마지막 탈출방법이기도했던 강제징집에 응하고 말았다.
그가 입대하기 전까지 송지원과 오태석은 학교는 달랐지만 이념을 함께하는 동지였으며 선배였을뿐이었다. 과묵했던 그가 송지원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맨처음 홍선배의 입을통해서였다. 그는 군대에 입대하기 전 홍선배와 후배들이 있는 자리에서 간곡한 말로 송지원을잘 돌봐주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이었다. 입대해서 2년뒤인 초겨울 그는 처음으로 휴가를 나왔고휴가를 왔다는 사실도 후배의 연락을 통해서였다. 지난날의 동지들끼리 모여 술자리를 벌일 장소와 시간을 연락받았었고, 지원은 청진동에 있는 그 선술집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 선술집에 그의후배나 지난날의 동지들은 단 한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쪽 구석자리에 혼자 앉아 소주잔을기울이고 있는 사람은 한눈에 알아보았던 오태석이었다. 작은 체구에 가무잡잡했던 얼굴에는 낯선 군모가 씌어 있었다. 그 역시 첫눈에 지원을 알아보고 막 입구에 들어서는 그녀를 향해 손을들어 보였다. 누군가가 두사람만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었다.
두사람은 땟국이 밀리는 그 작은 목로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살벌했던 이념서클의 리더는 한낱쫄병으로 변신해 있었고, 송지원은 이제 묵삭은 영문과 졸업반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눈에 눈치챌정도로 지쳐있었고 송지원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동지가 아닌 이성의 남자로 그가 다가오고있다는 진한 느낌 때문이었다.
"아주 탁월한 여자가 되어있군"
악수를 나누고난 뒤 오태석이 처음으로 내뱉은 중얼거림이었다.
"수척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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